사진 없던 시절의 도시 … 동서양 열다섯곳 그림 이야기
도시 공간의 역사가 오롯이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에는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 담겨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한 장의 그림이 있다. 사진 기술이 없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가들이 도시 전체의 정보를 담은 '그림지도'를 그렸다. 가지각색의 건물, 인파가 모이는 광장, 골목길, 다리, 성벽까지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나타냈다.
'도시의 만화경'은 전 세계 동서양 15곳 도시의 이야기를 집대성해 다룬 역사 그림책과도 같다. 작가인 손세관 중앙대 명예교수는 "한 도시를 놓고도 그리고 싶은 장면이 수백, 수천이지만 애써 하나의 화면에 도시를 모두 담는 수고를 하는 역사 속 기인도 많았다"고 전한다.
그가 '미친 짓'이라고 부르는 결과물은 후세에 물려져 인류 역사 기록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책은 빈, 시에나, 피렌체와 베이징, 교토, 서울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도시 문명의 역사 건축 미술사를 다뤘다.
"많은 이가 가고 싶어하는 도시들로서, 제각각 장소의 혼이 돌올하다. 그러니 화가들이 앞다투어 이들 도시를 그렸다. 나는 도시마다 그 전체를 그린 그림 한 장을 주인공으로 내걸고 그 밖의 다양한 그림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장소의 혼을 불러들였다."
책에서 소개되는 첫 도시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평원에 자리한 시에나다. 수백 년 동안 피렌체와 경쟁하며 문화예술의 성지로 부흥했던 이곳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책에는 유럽 최초의 세속 그림이었던 '좋은 정부의 도시'를 비롯해 의회정치, 축제의 장 역할을 했던 캄포광장의 전경 등을 세세한 설명과 함께 담았다.
서양에서는 도시를 건물 도로 수목 등을 종합해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린 반면, 동양에서는 평면지도에 그림을 섞어 그렸다. 시가지 정보는 도면으로, 주변 풍경은 산수화의 화폭으로 담는 형식이었다. 서민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도시 풍속화도 동양식 특징이다.
12폭 병풍에 19세기 초반 한양 도성을 그린 '경기감영도'와 일본 에도 시대 교토의 모습을 그린 '낙중낙외도' 등이 실려 있다.
책에 담긴 그림 450여 장으로 독자는 역사적으로 빛났던 당대 구도심을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동서양의 건축과 도시, 주거문화를 연구해온 작가는 그림지도에 수십 년간 강한 애정을 가져왔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의 말대로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인 도시라는 공간이 인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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