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경제경영서] 배터리를 갖는자, 패권을 쥔다
S&P연구원이 그린 배터리 지도
G2가 주도하는 패권 경쟁 속
한국기업 경쟁력과 中의 위협
핵심소재·장비 등 공급망부터
다가오는 폐기물 재활용까지
21세기 석유가 된 배터리 분석
"한국은 진정한 '배터리의 나라'다. 고유한 공급망으로 유일무이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전기차 배터리 전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의 경쟁력 비결은 뭘까. 이를 경쟁 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밀어붙이던 팬데믹 암흑기에도 생산량을 늘리고 미래에 투자하며 전기차에 대한 믿음을 지켜온 덕분인 것으로 분석하는 책이 나왔다.
시장분석 기업 S&P글로벌의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배터리 분야 수석 애널리스트의 첫 책이다. 런던에 거주하는 폴란드인인 저자는 한국 기업의 과감한 투자로 유럽의 배터리 공장이 된 고국의 변화를 지켜보며 이 산업의 세계지도를 그릴 결심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미 업계 전문가들은 더 이상 전기차가 내연차를 대체할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그 대신 '언제냐'고 묻는다.
저자는 두 가지 맥락에서 배터리 산업을 조망한다. 첫째,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소재부터 배터리의 각종 부품과 장비까지 공급망을 해부하며 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을 풀어낸다.
출발점은 중국이다. 중국은 전기차 산업의 모든 가치사슬을 자국에 내재화했다. 놀랍게도 1986년 3월 중국 물리학자 4명이 덩샤오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된 '863계획'이 시초다. 중국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제안한 7대 산업에 신소재와 에너지가 포함되면서 중국의 배터리 산업이 발아했다. 중국은 2010년대 온 나라가 거대한 실험실이 돼 내연기관차를 포기하고 전기차로 직진하는 드라이브를 걸었다. 저자는 중국 배터리 산업 성장의 동력이 국가 경제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처하고, 에너지 안보까지 강화해야 하는 중국 정치인들의 딜레마에서 비롯됐다고 결론 내린다.
둘째, '신에너지 경제' 패권 경쟁의 밑그림을 그린다. 배터리 산업을 분석할수록 이 경쟁은 'G2 전쟁'으로 비약함을 알게 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켜 배터리 완제품은 물론, 부품과 원자재까지 미국 혹은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생산하도록 강제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과 EU가 받지 못하는 최혜국대우를 한국의 일부 기업이 받을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내심 웃을 수 있는 이유다. IRA로 인해 저자는 "미국에서 셰일혁명에 비길 만한 배터리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견한다.
현시점에서 배터리 전쟁의 축은 한·중·일 삼국이다. 리튬은 팬데믹 전후 가격이 1000% 뛰었다. 가격 폭등으로 리튬이 국유화되는 등 광물은 지정학적 쟁점이 됐다. 중국은 리튬 쟁탈전을 위해 서구의 광업 기업 지분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 최대 리튬 기업 톈치리튬, 간펑리튬은 국가적 이익에 복무한다. 반면 세계 최대 리튬 기업 앨버말은 중국 기업과 달리 호주와 칠레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만족하며 투자자들에게 의무를 다하는 원칙을 지킨다. 국가자본주의가 이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이유다. 일본은 배터리 기술 종주국에서 지금은 후발주자가 돼 중국과의 리튬 쟁탈전에서 뒤지고 있다. 국가 주도로 성장한 한국은 유럽을 파트너로 삼으면서 시장을 선점했지만, 중국의 도전은 거세다.
다음 경쟁 종목은 공교롭게도 재활용 산업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과 일본은 전자제품 강국이다. 막대하게 쏟아지는 전자기기 폐기물을 통해 광물 자원을 확보하는 재활용 산업의 성패는 폐배터리 확보와 추출한 금속 가격에 달렸다. 두 나라의 지척에서 저효율 전기차를 양산해온 중국에서는 당장 2025년부터 폐배터리가 쓰나미처럼 배출된다. 이 산업에선 위험에 노출되는 인간의 노동력을 넘어 분류와 해체를 위한 인공지능과 로봇이 필요해진다. 배터리가 진정한 21세기의 석유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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