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장인 김은숙 작가의 복수극이 성에 차지 않는 분들에게('더 글로리')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3. 1. 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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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스릴러 안에서도 김은숙의 로맨스는 살아 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정통 복수극 스릴러를 기대한 시청자에게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전개는 지지부진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도입부에서 문동은(송혜교)이 박연진(임지연)의 얼굴에 스테이플러를 박는 상징적인 장면 외에 잔인한 복수의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더 글로리>는 극 초반 고교생 문동은(정지소)이 고교생 박연진(신예은)이 이끄는 무리에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장면들은 시청자가 힘겨울 정도로 잔혹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초등학교 교사가 된 문동은의 복수는 총이나 칼처럼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문동은은 일일 복수극의 여주인공처럼 사납게 소리 지르거나 눈을 부라리지 않는다. <더 글로리>에서 상징처럼 쓰이는 집을 짓는 바둑 대결처럼 문동은의 복수는 성공한 박연진의 집을 포위해 허물어뜨리는 과정이다. 그 사이사이 문동은은 다시 만난 가해자들을 칼이 아닌 날카롭고 서늘한 말로 무너뜨린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가 처음 시도하는 스릴러 복수극이다.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많은 정통 스릴러를 접해온 시청자들의 입맛에 <더 글로리>는 어떤 맛일까? 로맨틱코미디 장인인 김은숙 작가는 일단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잡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문동은의 복수가 시작된 이후 자극적이고 잔인한 전개나 반전 없어도 드라마는 계속해서 긴장과 흥미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식은 정통적인 방식의 스릴러 플롯의 힘은 아니다.

김은숙 작가는 거의 처음으로 로맨스가 아닌 드라마를 선보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장기인 인물과 인물 사이의 로맨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로맨스의 방식으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주는 효과를 자아낸다.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의 로맨스 구도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문동은은 많은 인물들과 로맨스와 비슷한 감정 구도를 만들어간다. 이 감정 구도의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더 글로리>는 전형적인 스릴러와는 다른 느낌의 흥미진진함을 준다.

일단 성형외과 의사 주여정(이도현)은 문동은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연하의 남자다. 그의 역할은 평생 지원군이 없던 문동은에게 내 편의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다. 문동은에게 왕자님이 필요 없으니 칼을 든 망나니가 되어서라도. 그런데 문동은은 미처 몰랐지만 주여정 역시 복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주여정은 과거 사이코패스 범죄자에게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교도소의 범죄자는 주여정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며 그를 자극한다. 하지만 주여정은 마음으로만 복수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그런 주여정이 보기에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문동은의 삶은 그가 꿈꾸던 삶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같은 꿈을 꾸는 자를 만나면 사랑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한편 문동은은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정성일)과도 긴장감 넘치는 로맨스 구도를 이룬다. 날 때부터 성공한 냉철한 재벌남. 어찌 보면 하도영은 전형적인 로맨스물의 남자주인공이다. 얼음 같은 심장을 지닌 거탑 같은 사내를 여주인공이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로맨스의 전개니까. <더 글로리>에서도 문동은과 하도영은 바둑이란 대국을 통해 긴장감을 형성하며 서로에게 한걸음씩 가까워진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이 두 명이 그 끝을 바라보는 세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하도영은 아내 박연진과 다른 지적이고 알 수 없는 매력의 문동은에게 호감의 감정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문동은에게 하도영은 박연진을 무너뜨리기 위한 가장 큰 제물에 불과하다.

<더 글로리>는 강현남(염혜란)과 문동은의 츤데레 워맨스를 통해 잠시 시청자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비록 죽음을 공모하는 두 사람이지만, 친구도 없고 모성의 사랑도 받지 못한 문동은은 강현남을 통해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체험한다.

하지만 <더 글로리>의 가장 잔혹하고 강력한 로맨스는 문동은의 박연진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있다. 자살을 꿈꾸던 문동은은 삶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을 추락시킨 문동은에 대한 복수를 꿈으로 삼는다. 그 로망을 기초로 삶의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가며 위로 올라간다. 오직 박연진을 무너뜨리기 위한 마음 하나로. 그러면서 연애편지를 쓰듯 박연진에게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원망과 집착처럼.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의 데이지를 향한 독을 품은 사랑의 감정처럼.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박연진에게 품은 복수의 로맨스야 말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력인지도 모른다.

결국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는 주인공 문동은을 중심으로 엮어낸 따뜻한 로맨스와 비틀어진 로맨스의 서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어차피 스릴러와 로맨스의 시작점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읽지 못해 느끼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 원하는 상대를 손에 쥐려는 소유욕, 기약 없는 영광을 위해 끝까지 가는 무모함까지.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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