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 시즌 첫 무대…정체성 지키며 관객과의 소통 돋보여

임지우 2023. 1. 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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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발레·국악 등 다채로운 구성에 탄탄한 연주력 선보여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악단임을 입증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 시즌 오프닝 공연 장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이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23년 새 시즌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12일 저녁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2023년 시즌 오프닝 공연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 악단의 정체성과 관객과의 폭넓은 소통의 의지를 보여준 무대였다.

보통 서곡이나 협주곡, 교향악 작품 등으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과 달리 이날 공연은 1부에선 교향곡, 2부에서는 발레, 오페라, 국악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됐다. 이런 구성은 클래식뿐 아니라 오페라, 발레 등과 같은 재현 예술 장르와 더불어 국악,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자주 다루는 국립심포니의 정체성을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한꺼번에 무대에 올렸지만 국립심포니는 단순한 대중음악회를 훌쩍 뛰어넘는 높은 수준으로 세심하고 참신한 기획 무대를 선사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 시즌 오프닝 공연 장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부는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으로 채워졌다.

슈만 교향곡은 최근 들어 종종 연주가 이뤄지긴 하지만 아직은 국내에서 접할 기회가 흔치 않은 곡이다. 특히 이번에 지휘봉을 잡은 라일란트 감독이 '슈만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만큼 공연 전부터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그는 2020년 8월 슈만이 지휘자로 활약했던 악단인 뒤셀도르프 심포니에서 선정한 '슈만 게스트'로 꼽히기도 했다.

과연 라일란트의 슈만은 탁월했다. 슈만 교향곡 3번 '라인'은 정교한 악상들이 다채로운 리듬과 셈여림으로 맞물리는 명곡으로, 섬세한 움직임과 색채 변화가 많은 작품. 라일란트의 국립심포니는 이날 연주에서 분명한 접근법을 갖고 충실한 해석을 선보였다. 극적 효과 대신에 선명한 세부 표현을 앞세웠고, 차분하고 냉정히 악상을 통제하며 악장의 정점을 구조적으로 드러냈다. 1악장 첫 부분에서 악단의 몰입력이 느슨했던 것을 빼면 국립심포니는 전곡에 걸쳐 지휘자의 해석을 일관성 있게 재현했다.

1악장과 5악장에서 금관, 특히 트럼펫이 꼭 필요한 순간에만 부각되도록 아주 정밀하게 악상의 고조 과정을 매만졌고, 5악장 마지막의 호른 등 도드라지는 솔로 악구들도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귀에 분명하게 각인되도록 연주했다. 전체적으로 음향적 효율성이 아주 잘 발휘된 호연이었다. 또한 특별히 라인강의 잔물결을 묘사하는 2악장의 복합리듬은 대단히 생동감 있게 표현됐고, 정적인 대목에서 슈만의 특징인 현악과 목관의 더블링 또한 깨끗했다.

이날 저음 현악과 목관은 그 생동감과 응집력이 매우 훌륭했다. 구조적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긴장감이 있지만 과한 힘은 들어가지 않은 연주는 라일란트가 지난 1년간 국립심포니의 연주력을 끌어올린 것은 물론, 악단과의 신뢰를 매우 탄탄히 구축했음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 시즌 오프닝 공연 장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부는 발레 음악으로 문을 열었다.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과 '작은 소녀 줄리엣', '기사들의 춤'이 연주됐고 윤별 발레 컴퍼니의 작은 발레 공연도 함께 진행됐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명랑하고 가벼우며 선율적인 줄리엣의 주제곡과 육중하고 두터운 화음을 가진 기사들의 주제곡이 분명히 대비되는 곡이다. 발레는 이런 대조를 기반으로 여성과 남성 무용수들의 춤,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심에 두고 서로 어우러지는 군무의 순서로 진행됐다. 국립심포니는 무용수들을 충실하게 보좌하며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적 매력을 전달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 시즌 오프닝 공연 장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음으로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이어졌다. 유명한 서곡 이후에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하바네라'를, 바리톤 고성현이 '투우사의 노래'를, 마지막으로는 김정미가 다시 무대에 올라 '집시의 노래'를 불렀다. 김정미는 거침없다기보다는 열정적인 카르멘을 들려줬고, 고성현은 가창과 연기를 넘나들며 카리스마와 흥을 보여줬다.

악단은 1부와는 전혀 다른 음향으로 장내를 뜨겁게 달궜다. 이러한 오페라 연주는 국내 무대에서 국립심포니가 가지는 독특한 역할을 제대로 설명해 주는 무대였다. 이날 무대에서 국립심포니는 정교한 교향곡과 같은 순수 음악 장르뿐 아니라 다른 예술과 접목된 음악에서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국내 어떤 단체들보다 많은 수의 공연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는 역량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각인시켰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 시즌 오프닝 공연 장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무대는 고영열의 소리, 고석진의 북이 협연으로 나선 마지막 두 곡이었다. 판소리를 각색한 고영열의 '춘향전 중 사랑가'는 우리 판소리, 즉 우리말의 낭송이 지니는 음악적 에너지를 느낄 좋은 기회였다. 작곡가 우효원이 김영랑의 시에 곡을 붙인 '북' 또한 흥미로운 무대였다. 우리 음악과 호흡에 대한 성찰, 의성어와 낭송의 감각성을 악상과 연결한 참신함이 돋보였다.

국립심포니는 국악뿐 아니라 현대음악,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에도 열려 있는 악단임을 드러냈다. 요컨대 2023년을 여는 국립 심포니의 오프닝 공연은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 음악적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관객들과 더 넓고 깊게 소통하려는 악단의 자세가 더없이 빛을 발한 탁월한 무대였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3 시즌 오프닝 공연 장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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