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적은 (나만을 위한) 자유다”[책과 삶]
박구용 지음│길│734쪽│5만원
신자유주의 시대 종말 이후
경제적·이기적 ‘자유’의 범람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큰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부모님과 여행할 때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노래를 듣고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이 노래는 왜 이리 슬프노?”
왜 가슴이 먹먹해지고 할 말을 잃어버릴까? 빼앗긴 자유 때문이 아닐까? ‘자유’를 말할 때는 그냥 막연히 ‘자유’를 말해서는 안 된다. ‘누구’의 자유를 말하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자유가 중요한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나의 자유가 다른 이에게는 그의 자유를 빼앗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자유의 적은 자유다!” “늑대의 자유는 사슴에게는 죽음이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가 자신의 책 <자유의 폭력>을 간추리는 말이다. <자유의 폭력>은 자유를 최대로 늘리고 폭력을 최소로 줄여 늑대와 사슴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유의 적은 누구(무엇)인가?”라고 묻고 그 답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이다.
시대를 풍미하던 신자유주의가 사망하고 시대정신이 빈틈을 타서 영혼 없이 ‘자유, 자유, 자유’를 내뱉는 ‘좀비 자유주의’가 판친다. 이 위기의 시대에 <자유의 폭력>은 한국 사회를 넘어 세계시민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 사상을 제안하는 기획이다.
어쩌면 K팝, K영화, K드라마에 이어 ‘K철학’을 열어줄 수 있는 사상이다.
<자유의 폭력>은 학술서이지만 어렵지만은 않다. 동학농민전쟁과 5·18 민중항쟁, 나르키소스와 에코, <변신>, <쇼생크 탈출>, <피가로의 결혼> 등 역사적 사건, 신화, 소설, 영화, 음악뿐만 아니라 헤겔, 하버마스, 듀이, 롤스를 비롯하여 홉스, 로크, 흄, 밀, 루소, 스피노자, 칸트 등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이 새로운 사상을 만드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 있다.
동학·쇼생크 탈출·피가로의 결혼
다양한 소재를 용광로처럼 녹여
모두를 위한 시대정신을 제안
그 뜨거운 용광로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상이 붙들고 씨름하는 화두는 무엇일까? ‘자유의 폭력’, 곧 앞뒤 재지 않고 무자비하게 질주하는 자유의 폭주를 멈춰 세우는 일이다. 어떻게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빼앗는 폭력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만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나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자유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나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자유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명대사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내 안에 너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5·18 민중항쟁 때 도청에 남은 이들에게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들은 소총 한 자루, 세 발의 탄환으로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도청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자유가 나만을 위한 자유라고 여겼다면 그들은 도청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자유가 너도 위하는 자유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도청에 남았다. 지은이는 이 자유를 헤겔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 “최고의 자유는 아름다운 영혼의 부정적 속성, 곧 ‘나만을 위한’ 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자유의 적은 ‘나만을 위한 자유’다.
나만을 위한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보수적’ 정치 지향성을 가진 이들이다. 신자유주의를 비롯한 ‘보수적’ 자유주의는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보다 개인이 ‘인권’을 침해받지 않을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인권 가운데서도 개인이 자유롭게 돈을 벌고 지킬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개인이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가 커지면 자유롭게 돈을 벌고 지킬 권리를 사회나 국가가 제한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자유의 적은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다.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자유의 적은 자유다. 그들에게 자유의 적은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를 자유의 적으로 여기는, 돈을 벌고 지킬 자유다.
나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참된 자유를 되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무엇보다 나만을 위한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적’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자유로운 민주주의(free democracy)에서 그 열쇠를 찾는다.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는 서로 인정하고 함께 의사소통하며 연대하는 상호주관적 자유를 통해 사회나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사회다. 그는 이러한 상호주관적 자유, 곧 ‘의사소통적 자유’로 나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참된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자유의 폭력>은 자유·인정·담론이라는 문제의식을 우리 사회 현실과 씨름하며 발전시킨 역작이다. 700쪽이 넘는다. 두께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의 뛰어난 입담은 지루함을 날려버릴 것이다.
김광식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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