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에 휩쓸린듯 인파에 떠밀려…이태원 참사 부른 '군중 유체화'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참사 당시 사고 지점 앞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했고 넘어진 사람들로 인해 뒤따라오던 사람들도 순차적으로 넘어졌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이날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수사 브리핑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참사 상황을 재구성해 이같이 발표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10월29일 밤 10시15분 이태원역 인근의 세계음식거리의 밀집 군중이 갑자기 빠른속도로 해밀톤 호텔 인근 골목으로 떠밀려 내려오면서 사람들이 전도됐다는 설명이다.
전도된 시점부터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으로의 군중의 이동이 더욱 지체되면서 전도된 지점 뒤편으로 군중 밀집도가 점차 증가했다. 사고 발생 이후 사고 골목와 세계음식거리의 군중 밀집도가 모두 증가했다.
이때 넘어진 사람들의 눌림과 끼임으로 인해 발생한 압력으로 158명이 질식 등으로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최초 전도 지점부터 약 10m에 걸쳐 끼임이 발생했다.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 '뇌부종(저산소성 뇌손상)' 등으로 확인됐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인근 골목의 도로 폭은 평균 4m 내외다. 특히 사고 현장의 도로 폭은 3.199m로 이 골목에서 가장 좁은 지점이다. 해마다 핼러윈데이를 맞아 이태원역 인근의 세계음식거리에 인파가 운집하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COVID-19) 상황 관련 행정명령이 해제돼 인파가 급증했다.
가파른 골목의 지형도 사고 발생의 원인으로 꼽힌다. 참사 원인 분석에 자문한 박준영 금오공대 기계설계공학과 교수는 "최대 20도까지 각도(경사도)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넘어지는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한번에 넘어진 건 기울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계음식거리에 있는 T자형 사고 골목 입구는 저녁 8시30분쯤부터 사고 발생 시까지 인파 밀집으로 인한 극심한 정체가 지속됐다. 사고 골목은 인파 밀집으로 인한 정체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통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저녁 8시30분쯤부터는 세계음식거리와 참사가 발생한 해밀턴 호텔 골목이 만나는 T자형 삼거리에 중심으로 모여든 인파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밤 9시부터 10분동안 4건의 112신고가 연달아 접수되는 등 세계음식거리 인파 밀집으로 인한 위험이 지속됐다.
밤 9시30분쯤에는 세계음식거리의 인파가 사고 골목으로 몰려 내려와 사고장소 주변으로 인파가 밀집했고 밤 10시쯤 사고 골목에서 내려온 인파, 이태원역에서 나온 인파로 인해 차로까지 밀려 내려오는 등 인파 관리가 되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사고 발생 직전인 밤 10시13분쯤에는 군중의 밀집이 더욱 심화돼 T자형 내리막길을 통해 인파가 떠밀려 내려오는 등 군중 유체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손제한 특수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오후 5시 이후 인파가 급증해 밤 9시쯤부터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이후 정체와 풀림을 반복하던 중 밤 10시15분쯤 사고 골목으로 많은 사람이 떠밀려 내려오면서 A주점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졌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후 밤 10시19분 경찰이 사고 골목 아래쪽에 도착해 구조를 개시했다. 밤 10시30분 119구조대도 현장에 도착해 구조를 개시했다. 사고 골목 위쪽에는 경찰이 10시32분, 119구조대가 밤10시37분 도착해 구조를 개시했다.
경찰과 소방은 끼임으로 인한 압력이 덜한 사고 골목 위쪽에서부터 끼여있던 사람들을 구조하면서 순차적으로 심폐소생술 실시했고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이 넘게 지난 밤 11시22분이 돼서야 끼임이 해소됐다.
특수본은 이번 사고의 진상 확인과 책임 규명을 위해 현장 주변 CCTV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언론 영상, 제보 영상 등 180여점을 확보해 분석했다. 이어 두 차례에 걸쳐 국과수와 합동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사고장소를 정밀 계측해 단위 면적(㎡)당 인파의 밀집도를 확인했다.
강주헌 기자 zoo@mt.co.kr,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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