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불운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2023. 1. 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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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설계 기사였던 야마구치 쓰토무는 1945년 여름 히로시마로 출장을 갔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운을 맞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에 운명의 여신을 경계한 시 '오 포르투나'로 시작된다.
총알 6개가 들어가는 리볼버 권총에 한 발을 넣고 쏘는 러시안 룰렛에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 확률이 6분의 5나 되므로 확률 이론에서는 행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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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란 무엇인가
스티븐 D 헤일스 지음·이영아 옮김
348쪽·1만9000원·소소의책
선박 설계 기사였던 야마구치 쓰토무는 1945년 여름 히로시마로 출장을 갔다.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그는 폭심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화상을 입고도 목숨을 부지한 그는 사흘 뒤 나가사키의 회사로 출근해 무시무시한 폭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사흘 전 봤던 새하얀 광선이 다시 사무실을 채웠다.
야마구치는 2010년 93세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운(運) 좋은 사람’과 ‘가장 불운한 사람’으로 함께 오르내린다. 두 번 원폭을 경험한 그는 운이 나빴을까, 두 번이나 죽음을 모면했기에 운이 좋았던 것일까.
미국 펜실베니아 블룸스버그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북미 인(璘)·무기물·질소난연제 협회의 경영 컨설턴트다. 인문학과 과학의 두 세계에 발을 걸쳐온 이력을 증명하듯 이 책에도 신화와 철학사를 넘어 과학사와 수학 공식이 오간다. 그런 그가 들여다본 ‘운’의 실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에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운에 대한 관념을 소개한다. 로마시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변덕스러운 우연에 당하지 않으려면 정념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나 친구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게 미덕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운을 맞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에 운명의 여신을 경계한 시 ‘오 포르투나‘로 시작된다. 포르투나는 ’가난한 자도 권력자도 얼음처럼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하고 심술궂은‘ 존재다.
중간부에서 저자는 운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확률 이론과 양상(樣相)이론, 통제 이론이다. 확률 이론에 따르면 ‘중요한 일이면서 확률이 낮은 일’이 행운 또는 불운이다. 양상 이론에서는 ‘실제 사례에 아주 근접한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 운의 영역에 속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총알 6개가 들어가는 리볼버 권총에 한 발을 넣고 쏘는 러시안 룰렛에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 확률이 6분의 5나 되므로 확률 이론에서는 행운이 아니다. 반면 바로 한 칸 차이로 총을 맞을 수도 있었으므로 양상 이론에서는 행운이 된다.
두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통제 이론이다. 러시안 룰렛에서 살아남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므로 행운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통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앞 두 이론의 반복에 그칠 수 있다.
‘도덕적 운’과 ‘지식에 관한 운’도 있다. 악행의 크기는 같은데도 왜 살인범은 살인미수범보다 크게 처벌받는가. 이것은 도덕적 운의 영역이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우연의 결과지만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우연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일까. 이것은 ‘지식에 관한 운’의 영역이다. 확률과 양상, 통제 등 세 이론은 이같은 운을 설명하는데 벽에 부딪힌다.
“운에 반대한다.”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우리는 운을 정복할 수 없다. 무찌르고 말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운이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에 불과하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관점이다.”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우리의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아온 운명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운수를 본 뒤 개운치 않은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스티븐 D 헤일스 지음·이영아 옮김
348쪽·1만9000원·소소의책
선박 설계 기사였던 야마구치 쓰토무는 1945년 여름 히로시마로 출장을 갔다.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그는 폭심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화상을 입고도 목숨을 부지한 그는 사흘 뒤 나가사키의 회사로 출근해 무시무시한 폭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사흘 전 봤던 새하얀 광선이 다시 사무실을 채웠다.
야마구치는 2010년 93세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운(運) 좋은 사람’과 ‘가장 불운한 사람’으로 함께 오르내린다. 두 번 원폭을 경험한 그는 운이 나빴을까, 두 번이나 죽음을 모면했기에 운이 좋았던 것일까.
미국 펜실베니아 블룸스버그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북미 인(璘)·무기물·질소난연제 협회의 경영 컨설턴트다. 인문학과 과학의 두 세계에 발을 걸쳐온 이력을 증명하듯 이 책에도 신화와 철학사를 넘어 과학사와 수학 공식이 오간다. 그런 그가 들여다본 ‘운’의 실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에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운에 대한 관념을 소개한다. 로마시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변덕스러운 우연에 당하지 않으려면 정념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나 친구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게 미덕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운을 맞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에 운명의 여신을 경계한 시 ‘오 포르투나‘로 시작된다. 포르투나는 ’가난한 자도 권력자도 얼음처럼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하고 심술궂은‘ 존재다.
중간부에서 저자는 운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확률 이론과 양상(樣相)이론, 통제 이론이다. 확률 이론에 따르면 ‘중요한 일이면서 확률이 낮은 일’이 행운 또는 불운이다. 양상 이론에서는 ‘실제 사례에 아주 근접한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 운의 영역에 속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총알 6개가 들어가는 리볼버 권총에 한 발을 넣고 쏘는 러시안 룰렛에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 확률이 6분의 5나 되므로 확률 이론에서는 행운이 아니다. 반면 바로 한 칸 차이로 총을 맞을 수도 있었으므로 양상 이론에서는 행운이 된다.
두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통제 이론이다. 러시안 룰렛에서 살아남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므로 행운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통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앞 두 이론의 반복에 그칠 수 있다.
‘도덕적 운’과 ‘지식에 관한 운’도 있다. 악행의 크기는 같은데도 왜 살인범은 살인미수범보다 크게 처벌받는가. 이것은 도덕적 운의 영역이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우연의 결과지만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우연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일까. 이것은 ‘지식에 관한 운’의 영역이다. 확률과 양상, 통제 등 세 이론은 이같은 운을 설명하는데 벽에 부딪힌다.
“운에 반대한다.”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우리는 운을 정복할 수 없다. 무찌르고 말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운이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에 불과하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관점이다.”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우리의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아온 운명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운수를 본 뒤 개운치 않은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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