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싸워야 할 상대 고은 한 사람 아닌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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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사실에 대한 해명과 사과 없이 5년 만에 시집을 출간하며 제2의 논란을 야기한 고은 시인이 언론과의 접촉은 피한 채, 출판사가 시집과 대담집에 대한 회수 계획이 전혀 없음을 밝혀왔다.
이번 출간된 고은 시인의 시집 <무의 노래> 는 129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당의 시들이 '무(無)의 철학'을 반영했다고 출판사는 평가하되, 그 방식으로 인해 '미투 고발'한 피해의 목소리와 존재까지 눙치고 되레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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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당사자 신문 신청도 응하지 않아”
윤한룡 실천문학 대표 <한겨레> 인터뷰
“출간 기준에 따른 것…회수 계획 없어” 한겨레>
성추행 사실에 대한 해명과 사과 없이 5년 만에 시집을 출간하며 제2의 논란을 야기한 고은 시인이 언론과의 접촉은 피한 채, 출판사가 시집과 대담집에 대한 회수 계획이 전혀 없음을 밝혀왔다. 성폭행 사실을 고발했다 2018년 10억원짜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은 당시 대적해야 할 상대가 고은 시인 하나가 아닌 ‘그를 키운 피라미드 문단’ 전체라고 회고했다. 최 시인은 앞서 고은 시인과 출판사 등을 아울러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고 써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최영미 시인은 13일 <헤럴드경제>에 기고해 “고은은 2018년 여름 나를 상대로 뻔뻔스럽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1·2심에서 내가 모두 승소하였다”며 “2019년 겨울에 재판이 끝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는 고은 시인이 이번에 낸 시집을 통해 사과나 해명 없이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쓴 데 대한 ‘고통의 미러링’이다.
또 재판 당시 고은 시인은 공황장애를 “핑계”삼아 신문 신청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최 시인은 “자신이 제기한 소송인데 법정에 나올 배짱도 없는 비겁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란 말인가” 물었다. 이어 최 시인은 “고은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인지 그간의 경력과 활동을 소장에 길게 열거하였다. 소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싸워야 할 상대가 원고 고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거대한 네트워크, 그를 키운 문단 권력과 그 밑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고 이익을 챙긴 사람들, 작가, 평론가, 교수, 출판사 편집위원, 번역가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전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십 년 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탈퇴한 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에 대한 비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출판사는 시집 회수 등의 계획이 없음을 공식 확인했다. 2018년 당시 일부 출판사는 출판한 고은 시인의 시집을 전량 회수해 폐기한 바 있다. 시집 등을 펴낸 실천문학의 윤한룡 대표는 13일 <한겨레>에 “(시집과 대담집을) 회수한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라며 “계획도 없다. 그럴 책이면 처음부터 출간하지 않았다. 본사는 본사 나름의 출간 기준이 있다”고 밝혀왔다.
출판사는 고은 시인의 시가 사회 맥락적으로 ‘2차 가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반박했다. 윤 대표는 이에 대한 <한겨레> 질문에 “해설을 하신 김우창 선생님도 (2차 가해 소지에 대해) 그렇게 보지 않으셨고 저도 그렇다”며 “이미 발표된 작품은 작가와 별개로 하나의 유기체죠. 느낌은 독자 각각의 몫이지 저자조차 내가 이런 은유로 썼으니 너도 그렇게 해석하라고 하면 폭력이 되겠지요. 그렇게 읽히는 독자의 감상의 자유를 어느 신이 있어 구속할 수 있겠는지요? 그게 예술작품의 존재 이유겠지요”라고 답변했다. 지난 11~12일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번 출간된 고은 시인의 시집 <무의 노래>는 129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당의 시들이 ‘무(無)의 철학’을 반영했다고 출판사는 평가하되, 그 방식으로 인해 ‘미투 고발’한 피해의 목소리와 존재까지 눙치고 되레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가령 “속은 겉이 아니란다// 다 겉이면/ 속 없는 겉뿐이란다// 껍데기여 오라/ 껍데기여 오라// 나 보수반동으로 사뢴다/ 돌이켜보건대// 이 세상은 드러내기보다/ 덮어두기/ 꼭꼭 숨기가 더 많다//…”(‘숨은 꽃’ 부분), “무가 있어야 한다/ 무 없으면/ 다 없다/…/ 미친 유有 한복판/ 무 있어야 한다.”(‘무無의 노래’ 부분) 등이 그러하다.
한국여성민우회는 13일 성명을 내어 “반성 없는 가해자를 어떤 제재도 없이 복귀시키는 실천문학사의 무감각함에 통탄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의 복귀를 일언반구 없이 진행하며, 문학업계를 ‘사과 한마디 없이도 가해자 자신이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고은이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라고도 지적했다. 온라인 등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비평을 하는 정승원 경북대 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은 시인이 사후에 명예가 어느 정도 되려면 진솔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고 작품이 압도적으로 좋아야 한다… 문인에게 최고의 치욕은 상징적 죽음” “고은이나 그를 미는 문학 진영은 대중들을 아래로 보는 대단히 오만한 사람들”이라는 등의 글을 최근 연이어 올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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