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언제까지 '양치기' 머스크를 신임할까
주가 하락으로 2000억 달러 손실
테슬라 수익성 찾아야 주가 회복
머스크 기행 위험한 변수될 수도
# 일론 머스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말을 여러 차례 바꾸며 잡음을 일으켰고, 테슬라 주식 30조원어치를 판 이유도 계속 바뀌고 있다.
#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고금리로 성장주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올해에도 투자자들이 머스크에게 보내는 신뢰는 계속될 수 있을까.
2000억 달러(약 250조원)를 버는 일이 힘들까, 2000억 달러를 순식간에 잃는 일이 더 힘들까. 일론 머스크는 올해 들어 이 두가지 일을 겪은 유일한 사람이 됐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 31일 일론 머스크의 재산이 2021년 11월 4일 3400억 달러로 최고점을 기록한 후 2022년 12월 말 기준으로 1370억 달러(약 170조원)로 줄어들면서 세계에서 최초로 자산을 2000억 달러나 잃은 유일한 사람이 됐다고 보도했다.
테슬라 주가 급락세가 계속되던 지난해 12월 14일엔 4년 동안 유지해온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내려놔야 했다. 그 타이틀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게 넘어갔다. 아르노 회장의 자산은 1780억 달러다. 일론 머스크는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의 재산보다도 많은 돈을 지난 1년간 잃은 셈이다.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대부분 주식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상장사 테슬라 지분의 13.4%를 가지고 있는 머스크는 또다른 상장사 트위터 주식과 비상장사 스페이스X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가의 흐름에 자신의 자산 가치가 그대로 연동되는 만큼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국의 긴축과 고금리 정책 기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 이슈➊ 테슬라 vs FAANG = 그렇다면 머스크가 재산의 절반 가까이를 잃은 것이 오로지 시장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미국의 기술주들이 상장해 있는 나스닥종합지수는 2022년 1월 10일 1만4942포인트에서 1년 만인 2023년 1월 9일 1만569포인트로 29.27% 급락했다. 그런데 테슬라 주식은 같은 기간 306달러에서 113달러로 무려 67.95% 폭락했다. 나스닥지수 낙폭 수준의 2배다.
고금리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 기술주ㆍ성장주의 가치 하락이다. 테슬라의 비교군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들인 FAANG이라면 공정해 보인다. FAANG는 페이스북(메타),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알파벳)의 첫 글자를 모은 것이다.
메타 주가는 2022년 1월 10일 328.07달러에서 올해 1월 6일 130.02달러로 60.37% 하락했다. 메타의 주가가 급락세를 탄 시점은 지난해 2월 2일 2021년 4분기 실적 발표 날이었다. 분기 순이익이 처음으로 감소하는 등 실적도 좋지 않았지만, 이날 하루 주가가 20% 이상 내려간 건 성장 가능성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메타의 4분기 이용자 수는 전 분기보다 50만명이 감소했는데 이는 2004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성장주는 말 그대로 '성장 가능성'이 그 회사의 가치를 결정한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릭스도 성장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2분기 한때 고점 대비 80% 가까이 주가가 빠졌다.
하지만 2022년 10월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이후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현재 주가는 지난해 1월보다 41.55% 하락하는 수준으로 반등했다. 넷플릭스의 주가가 살아난 건 지난해 3분기 신규 유료 가입자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 이후 증가했던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지난해 1분기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 2분기에도 97만명이 감소하면서 주가 급락 사태가 발생했다.그러던 지난해 3분기엔 다시 241만명 증가세로 돌아서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 주가는 같은 기간 46.70% 하락했고, 구글 주가도 37.02% 내려갔다. 두 회사 모두 경기침체 우려 등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지만, 테슬라, 넷플릭스, 메타보다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애플은 같은 기간 24.72% 하락했다. 애플의 주가 하락은 지난해 하반기에 집중됐는데, 이는 신형 아이폰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했기 때문이다.
■ 이슈➋ 머스크냐 시장이냐 = 이처럼 FAANG의 주가 하락엔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테슬라 역시 마찬가지다. 테슬라 주가의 하락은 이 회사의 아이콘인 일론 머스크와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테슬라가 성장주에서 자동차 관련주로 편입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도 연관성이 깊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12일 테슬라 주가 하락세가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로 테슬라의 중국 수요 감소와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의 파장을 꼽았다.
WSJ는 "테슬라 주식은 펀더멘털 측면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며 테슬라의 주가가 올해 수익 전망보다 대략 32배에 달하기 때문에 주식으로선 굉장히 높은 가치이지만, 테슬라 주가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한마디로 단순한 시장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테슬라 주식이 이제는 시장의 논리로 설명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는 테슬라 주가가 회복되려면 이젠 '일론 머스크를 향한 희망'이 아니라 수익 성장세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생산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가격을 높여 수익을 끌어올리는 것도 힘들다. 테슬라를 대체할 만한 모델들이 많아지면서 가격 경쟁력 또한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시장에서 테슬라가 고객에게 인도한 차량은 전월보다 44% 감소하고 전년 동기보다 22%나 줄어든 5만5796대였다. 반면 중국의 전기차 회사 BYD는 12월에 전월 대비 2% 증가하고 전년 동월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23만4598대를 고객에게 인도했다.
특히 생산량 면에서 테슬라의 열세는 두드러진다. GM의 현지 합작사인 SAIC-GM 판매량은 테슬라보다 월등히 많았다. 테슬라는 중국, 한국 등에서 가격을 인하했다. 회사는 비단 생산량만의 문제가 아닌 수요의 문제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이슈➌ 머스크의 이중성 = 하지만 테슬라의 주가를 머스크와 완전히 떼어놓긴 어렵다. 앞서 언급했던 '머스크를 향한 기대'를 완전히 접을 순 없다는 건데, 이는 일론 머스크의 재산 대부분이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지분인 만큼 머스크 개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어서다.
특히 머스크는 자신이 소유한 테슬라 주가를 향해서 몇년 동안 불만을 터트려왔다. 테슬라 주가가 너무 높고, 낮아져야 한다는 발언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그런데 머스크는 한편으로는 테슬라 주가 하락을 예측하고 공매도를 한 빌 게이츠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항의를 했다. 머스크는 지난 2021년 4월 23일 빌 게이츠에게 테슬라 주식 5억 달러어치 공매도를 왜 했냐고 따지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머스크는 한달 후에도 "빌 게이츠가 여전히 테슬라에 대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매도 포지션을 갖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머스크의 이런 도발에 빌 게이츠는 "나는 내 나름대로의 분산(투자) 방법이 있다"고 답했다. 빌 게이츠는 "전기자동차가 인기가 많아질수록 전기차 영업에서의 경쟁도 더 치열해진다"며 "전기차가 도입되는 것과 전기차 회사들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머스크는 테슬라 주가가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주가 하락에 베팅한 빌 게이츠에게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머스크가 테슬라 주가를 높일 계획인지 아니면 낮출 계획인지는 주가는 물론이고 회사의 경영 전략에 큰 영향을 줄 요소지만, 머스크의 말과 행동이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머스크는 2021년 말에 재산세를 납부한다는 이유로, 2022년에는 트위터 인수 자금를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테슬라 주식을 계속 내다 팔았다. 머스크는 이 기간 무려 30조원어치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2021년 11월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주식의 미실현 차익이 세금 회피 수단이라는 주장이 많으니 테슬라 보유 주식의 10%를 매각하겠다"며 찬반 여부를 투표에 부쳤고, 실제로 1주일 만에 88억 달러(약 12조원)어치를 매도했다.
머스크는 지난해 자신의 지분 매각 이유가 세금 납부를 위한 것이었다고 정정했다. 그런데 머스크는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테슬라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했다. 4월에 80억 달러어치, 8월에 70억 달러어치, 11월에는 39억5000만 달러어치, 12월에도 35억8000만 달러어치를 매각했다.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의 주식 대량 매도는 시장에 의심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행위다. 이는 트위터 인수 자금 마련이 그 이유였다.
일론 머스크는 결국 지난해 12월 22일 2025년까지 테슬라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머스크는 이날 트위터에서 자신의 팔로워들과의 채팅을 통해서 자신이 최근 테슬라 주식을 판 이유가 경기침체를 대비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재산세 납부, 미실현 차익이 세금 회피수단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발, 트위터 인수 자금 마련이라는 주장에 이어 주식 매도 이유가 줄줄이 추가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이같은 행동을 단순히 기행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2년 테슬라 주가가 폭락을 이어갈 때조차 국내 투자자들은 테슬라 주식을 192억 달러어치나 매수했다. ETF를 제외하면 2위를 기록한 애플 주식보다 무려 5배 이상이나 되는 투자금이다.
지난해 트위터 인수 과정과 최근의 테슬라 주식 대량 매도 사태에서 일론 머스크의 '오너 리스크'는 충분히 입증됐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지분이 역사상 최저점을 기록하고 있는 올해에도 과연 대형 투자자들은 머스크를 계속 신뢰할 수 있을까.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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