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확증편향
[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다. 여러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달되니,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듣고 싶은 얘기는 이미 내 손의 핸드폰 안에 다 있다. 잠시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다른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내 생각은 정답이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오류를 말한다. 심리학 용어에서 출발한 이 단어는 마케팅 영역에서 그 작동원리를 입증했다. 내가 물건을 잘 샀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고객의 오류를 극대화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 마케팅의 본질일 뿐이다.
이런 심리적 오류 상태는 모든 사람에게 늘 있다. 그래서 마케팅은 고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점이 좋고, 이런 점도 있고…", 마구 던져 하나라도 걸리면 된다. 그 순간 지갑은 열린다.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미 지갑은 털렸다.
요즘 우리 정치가 그렇다. 세계 정치가 그렇다는 것에도 수긍할 수 있다. 반도체와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정보의 유통 속도가 이에 비례해 빨라진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BTS의 팬덤과 K-문화로 불리는 산업들이 모두 이런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본다.
이런 현상은 여러 나라에서 기존 정치 시스템을 거세게 흔들고 있기도 하다. 이미 끝난 걸로 봤던 극단적인 정치 이념 세력들이 유럽에서 집권에 성공하며 맹위를 떨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민주적이라는 선거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새로운 정치 세력들이 구시대의 이념 틀을 가지고도 마케팅을 잘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점점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향해 "그 정도 사고(라임펀드 사태)가 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제도를 바꿀지,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개선할지 등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소송 논의만 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하게 느낀다"고 직격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정상화하는 가운데 은행 영업시간도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은행권에 대한 국민 정서와 기대에 부합할 것"이라고도 했다.
금융정책 최고 책임자가 마치 정치인처럼 말하는 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금융정책의 정치적 화법에 따른 충격은 이미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사태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나? 바로 직전엔 글로벌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며 영국 최단 총리 불명예를 떠안은 트러스도 있었다.
무엇보다 기자가 봐 온 김주현이라는 사람의 화법과는 너무나 달라 놀랐다. 감투에 의한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굉장히 조급한 상태인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은행의 영업시간 문제를 두고 '국민 정서와 기대'를 말할 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발언은 마침 은행의 탄력점포 현장을 방문한 자리였다. 탄력점포는 관공서 소재 점포, 외국인 근로자 특화 점포 등 특수한 이유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일반적인 은행 영업시간과 달리 운영하는 점포를 말한다. 은행의 치열한 고민이 녹아 있는 현장이다.
이젠 묻고 싶다. 요즘 금리가 많이 올라 국민이 매우 어려우니 대출 이자는 받지 말고, 예금금리는 10%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이건 국민의 정서와 기대가 아닌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봐도 금융정책을 책임진 장관급이 이런 방식과 화법으로 입에 올릴 말은 아닌 듯하다.
무엇에 쫓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급함은 확증편향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엄중한 경제 현실에서 우리 금융정책과 감독 당국 수장들이 오류에 빠지는 위험을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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