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지휘부 쇄신이냐, 현 지휘부 존속이냐…북한의 바람은?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3. 1. 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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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통령실 안보 담당 고위직들은 북한 무인기 대응에 실패한 우리 군에 대한 문책을 "북한에 놀아나는 꼴", "북한이 노리는 것"이라며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인기 사건 초반만 해도 "우리 군의 비정상을 바로 잡겠다"며 벼르더니, 정작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자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알아챈 군 일각에서도 "지휘부를 흔들면 북한에만 이롭다"라는 말이 돕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실 고위직들의 주장대로 군 지휘부 문책은 북한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꼴일까요. "길이 3m 이하 무인기는 잡기 어렵다"는 우리 군의 고백으로 짐작건대, 애초에 북한은 2m짜리 소형 무인기가 우리 군 탐지망에 걸릴 줄 몰랐을 것입니다. 하물며 북한이 무인기 날리면서 우리 군 지휘부의 문책까지 노렸을 리 만무합니다.

지금 국면에서 북한은 진정 무엇을 노릴까요. 선택지는 크게 2가지입니다. 작은 무인기에 우왕좌왕 정신 못 차리는 우리 군 지휘부의 존속 또는 일벌백계를 통한 군 지휘부의 쇄신입니다. 대통령실 생각과 반대로 북한은 일벌백계로 쇄신된 지휘부보다 지금 그대로의 지휘부를 선호할 것 같습니다.
 

보고도 믿기 힘든 실책들

지난 9일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철저한 임무 수행을 지시한 김승겸 합참의장

이번 북한 무인기 대응 작전을 간단히 평가하면 전파·보고·발령의 3중 실패입니다. 전파·보고·발령의 실패는 경계와 작전도 무력화시키니 군의 기본 중 기본이 무너진 꼴입니다. 이 중 가장 치명적 실책은 서울을 방어하는 수도방위사령부에 무인기 상황이 전파되지 않은 것입니다. 육상이나 스케이트의 계주로 치면 2번 주자가 경기가 진행 중인 사실조차 모른 격입니다. 1번 주자가 뛴 다음 경기는 끝났습니다.

국방장관에게 무인기 포착 1시간 30분 뒤 보고도 난감합니다. 경공격기 KA-1이 무인기 쫓아 출격했다가 추락한 다음에야 국방장관에게 소식이 닿았습니다. 작전을 총지휘한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의 집무실이 한 건물 같은 층에 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적 무인기 대비 태세인 '두루미'도 장관 보고 즈음에야 발령됐습니다. 북한 무인기가 서울 왕복 비행을 거의 마쳤을 때입니다.

합참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수도방위사령부 전파가 막히고, 두루미가 늑장 발령되도록 합참은 방관했습니다. 장관 지각 보고는 100% 합참의 잘못입니다. 현역과 예비역 장교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못 하겠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전파와 보고를 위한 첨단 보안 네트워크가 실핏줄처럼 깔려있는데 장관부터 작전부대까지 '깜깜이'였다는 사실을 보고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중은 제 머리 못 깎고, 이발사는 가위 접고

합참의 전비태세검열실은 지난달 27일부터 우리 군 대응의 문제점을 식별하는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쯤 끝날 예정이었는데 이달 말까지 연장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철저한 조사를 위해 기간을 늘린 것처럼 비쳐지지만 별 기대를 못 받고 있습니다. 전비태세검열실은 합참 내 기관이어서 "중이 제 머리 깎겠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통령실 고위직들까지 "문책은 북한에 놀아나는 꼴"이라며 군 지휘부를 감싸고 있으니 조사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으면 이발사라도 가위를 들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기라도 하듯 김승겸 합참의장의 30년 전 대위 시절 무공이 군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의장은 결전 태세를 외치며 회의 주재하고 현장 점검 나서는 등 전에 없이 부지런합니다. 전파·보고·발령 3중 실패의 총책 같지 않습니다.

최근 몇 달 새 우리 군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북한 도발에 맞선다며 지상과 공중에서 미사일을 쐈다 하면 오발이었습니다. 매번 기강 바로 세울 기회였지만 매번 손 놓았고, 마침내 군인들도 이해 못 하는 전파·보고·발령의 3중 실패까지 범했습니다. 이쯤 되면 군 지휘부를 일벌백계하고 쇄신해야 군이 바로 섭니다. 현 지휘부의 무탈한 존속은 북한이 바라는 바입니다. 북한은 우리 군의 일벌백계와 쇄신을 경계합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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