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기로 했다[플랫]
자매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 자매가 있다. 성차별, 나이주의, 가족주의… 이런 것에 ‘반대’하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배우면서, 우리는 언니, 동생을 떠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말 그대로 부양 관계였다. 동생을 직장에 취직시켜 보증금을 모으게 도와 같이 이사를 다녔다. 평등 선언 후 동생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한없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내 ‘올바르지 않은’ 감정은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왜? 멋지지 않으니까.
선언 이후 우리는 자매 이전에 공동체 가족,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의 일원으로 지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를 “다종다양한 친밀성과 돌봄의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혼인과 입양, 출산으로만 가족을 만들 수 있는 현실을 ‘운동적으로’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남들은 우리 둘이 자매라는 사실을 잘 모르게 되었다. 거기 탈혈연 공동체죠? 결국 어떤 이야기는 갈 곳을 잃고 떠돌게 됐다.
내내 해온 고민 중 하나는 자매, 즉 방계혈족의 위치성이다. 예를 들면 공무원연금은 유족의 상속 순위에서 방계혈족을 제외한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 보장하는 가족돌봄휴가 역시 그렇다.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기준도 방계혈족을 제외한다. 솔직히 상속 문제는 거의 모두가 소위 사회의 ‘정규적인’ 자리에 있지 않은 우리 ‘가족’에겐 남 일 같지만, 그 뒤의 두 가지는 현실에서 부딪히며 알게 된 문제였다.
방계혈족은 엄연한 민법상 가족이다. 가족인데 가족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탈락된 자매의 문제를 가족구성권 ‘운동’에서 얼마나 다룰 수 있을까? 자매 문제는 ‘바른말들’ 사이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가족구성권이라는 이름으로 투쟁하고자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부양의 성격을 필연적으로 갖게 마련인 가족 간 돌봄에서 제도적으로 소외되는 문제라면, 자매는 바로 그 문제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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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영석 사회보험연구실장은 형제, 자매를 전체 피부양자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형제, 자매는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는 어떤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나? 왜 이들은 부양관계에서 제외되지 않는가? 다들 이런 차이를 둔 ‘진짜’ 이유에 대해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
‘탈가족’적 돌봄이란 이상을 당위적으로들 주장한다. “돈이 사람을 돌보는 게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맞지만, 어떤 이들의 ‘돈타령’을 좀 창피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에서 ‘기능’을 못하게 되면 가장 먼저 곤란에 빠지는 게 경제생활인데, 경제적 ‘기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가족과 돌봄의 핵심이 생계 부양에 있기 마련이다. 어떤 ‘가족’은 제도가 보장하는 장기적 관계 속에 안정감을 느끼며 ‘거래’를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기 수월하다. 평등한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장기적 관계로 지내는 게 구조적으로 가능한 상태인가? 이것이 내가 던지고 싶은, 비혈연·비혼인·자매 관계의 ‘가족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핵심 질문이다. 근본을 논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현 제도의 ‘예외’ 규정만 늘려갈 뿐이다.
▼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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