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껑충껑충’ 뛰더니 이젠 ‘아장아장’…긴축, 끝이 보인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2023. 1. 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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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소비자물가 하락세 뚜렷
경기선행지수 13년래 최저
달러·에너지값 강세도 주춤
기준금리 인상 명분 악해져
당분간 고금리 상황은 불가피
차입축소·구조조정 과정 필요
증시는 경기부양 기대 선반영
정부 외환거래 시간연장 호재
[자료:한국은행 경제통계, 인베스팅닷컴]

‘물건 값이 싸면 오를 징조이고, 비싸면 내릴 징조다(故物賎之徴貴 貴之徴賎)’.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는 부(富) 의 이치다.

12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6%대로 떨어졌다.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쳤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은행 관계자들은 다음달 1일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릴 것이라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현재 4.5%인 미국 기준금리가 올해 올라봐야 5% 초반에 그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긴축이 곧 중단될 것이란 관측이 시장에 가득하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명분이 힘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다. 강력한 긴축을 반영했던 달러지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에 근접했고 한때 1400원을 넘었던 원/달러 환율도 1200원 선에서 얌전하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렸던 경기(한·미 OECD 경기선행지수 기준)는 13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미끄러졌다.

[자료: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난해 10월과 11월 한미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각각 5%, 6%대였다. 여전히 절대수치 자체가 높다. 하지만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들의 힘은 약해지는 모습이다. 강력했던 미국의 고용지표도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한때 5.6%까지 치솟았던 임금상승률이 12월 4.6%로 둔화됐고, 신규 고용은 2년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규모 정리해고로 실업률 상승도 시간문제다.

우리나라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에너지 가격과 환율이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달러 강세로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가격이 높아져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다. 한은이 긴축에 나섰던 주요한 이유다. 하지만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1월 초 이후 하락하며 배럴당 70달러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예년보다 따듯한 겨울 날씨로 천연가스 가격 역시 뚜렷한 하락세다.

다만 긴축을 멈추더라도 중앙은행 입장에서 물가지표가 확실히 안정될 때까지는 경기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긴축은 불필요한 군살을 줄여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급팽창한 신용이 줄어야 하고, 저비용에 기대 연명한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실물경제의 체질 전환이 이뤄져야 금리를 내리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재발하지 않는다.

차입 축소(deleveraging)는 이미 진행 중이다. 2021년 하반기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가계대출 증가율은 줄어들어 지난해 10월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금감원 집계로 지난해 가계대출 잔액은 18년 만에 전년 대비 감소했다.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집값 하락세는 좀 더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출금리 절대수준이 높아 집을 사기 위한 차입은 당분간 계속 어려울 수 있어서다.

[자료:한국은행 경제통계]

긴축이 멈춰도 실물경제는 당분간 고금리에 따른 기회비용을 치러야겠지만 금융시장은 다를 수 있다. 최근 주식과 채권의 동반 강세는 긴축이 곧 끝날 것이란 기대를 선반영한 결과다. 긴축 종료가 뚜렷해지면 그다음에는 경기부양 기대까지 반영해 가격 수준을 좀 더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외환거래 시간을 연장하는 등 우리 증시의 MSCI선진지수 편입조건을 충족시키기 시작한 점도 긍정적이다.

상반기 기업 실적이 부진하겠지만 이를 ‘바닥 확인’으로 풀이할 가능성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으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위축됐던 중국이 최근 경기부양에 나선 점은 사업 관련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의 실적 개선 여지를 높이는 재료다. 에너지 수입가격 하락과 함께 중국으로의 수출이 정상화되면 원화 가치가 안정돼 한은의 긴축 명분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귀한 것이 극에 달하면 싸지고 싼 것의 값도 바닥까지 떨어지면 다시 올라간다. 귀해지면 오물처럼 내다 팔고 싸지면 구슬과 옥처럼 사들여야 한다. 재물과 돈은 물 흐르듯 돌아야 한다(貴上極則反賎, 賎下極則反貴. 貴出如糞土, 賎取如珠玉. 財幣欲其行如流水).”

춘추시대 말 월나라가 오나라를 꺾는 데 경제적으로 가장 큰 기여를 한 이가 계연(計然)의 말이다. 경제의 중요한 전환점이 어떻게 자산관리 전략을 세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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