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자씩 고전 옮기며… 르네상스 이끈 ‘지식의 상인’[북리뷰]

2023. 1. 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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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서점 이야기’를 쓴 역사 저술가 로스 킹은 피렌체 지식 혁명의 최전선에서 활용한 ‘세계 서적상의 왕’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의 삶을 조명한다. 이미지는 베스파시아노의 최고 고객이었던 당대 가장 위대한 전사 페데리코 다몬테펠트로. 책과함께 제공

■ 피렌체 서점 이야기

로스 킹 지음│최파일 옮김│책과함께

피렌체의 서적상 ‘베스파시아노’

수준 높은 필사본 1000권 제작

플라톤·키케로 등의 사유 전달

중세와 다른세계 꿈꾸게 만들어

인류학자·교황·국왕과도 교류

침체한 서양 문명의 활로 역할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는 경이로운 도시였다. 메디치 가문의 지배 아래 있던 도시는 강건하고 부유했다. 웅장한 성당, 아름다운 궁전, 널찍한 광장 등이 있었고, 이를 장식하는 그림과 조각이 가득했다.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이 작은 도시에서 오늘날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피렌체 서점 이야기’에서 미국의 역사 저술가 로스 킹은 르네상스의 탄생에 이바지한 한 이름 없는 인물을 조명한다. 피렌체 지식 혁명의 최전선에 있었던, ‘세계 서적상의 왕’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1422∼1498)다. 그는 피렌체에 찬란한 영광을 가져다준 현명한 사람들, 즉 책벌레의 중심에 있었다. 필사본 사냥꾼, 교사, 필경사, 학자, 사서, 서적상 등으로 이뤄진 이들은 중세와 다른 자유의 세계를 상상했다.

1422년 베스파시아노는 양모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그는 필사본 제본을 배운 후, 서적상 거리의 솜씨 좋은 장인이 되었다. 그는 표지 안쪽의 지식에도 강한 호기심을 품고 배우려 했다. 덕분에 몇 년 후 그는 당대 제일의 인문학자인 니콜로 니콜리, 포조 브라촐리니, 레오나르도 부르니, 잔노초 마네티 등과 교류를 시작했다. ‘지식의 상인’으로서 그의 인맥은 교황, 국왕, 대공, 추기경 등으로 뻗어갔다. 그중엔 코시모 데 메디치도 있었다. 모두 그의 오랜 단골이었고, 생애 말년에 쓴 ‘103인 명사들의 생애’에 나오는 인물들이었다. 르네상스란 말을 세상에 퍼뜨린 부르크하르트의 명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는 이 책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었다.

피렌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이 모이고, 거리의 토론과 강연, 독서 모임과 만찬 대화를 통해 새로운 지식이 탄생하는 ‘아르노 강가의 아테네’였다. 질병과 기근,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재앙의 14세기’를 지나면서 방향 감각을 잃고 죽어가던 서양 문명은 피렌체의 품에서 활로를 찾아냈다.

니콜로는 옛 지혜를 재발견하고 창조적으로 모방하는 데 문명 재생의 비결이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 대화의 기술인 수사학의 부흥이 절실했다. 피렌체는 무력으로 통치하는 전제국가가 아니라 연설과 투표, 설득과 합의로 통치되는 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페트라르카 이래 인문학자들은 유럽의 옛 수도원을 돌아다니며 고전들을 사냥했다. 포조는 특히 유능한 책 사냥꾼으로서, 수도원의 먼지 더미 속에서 루크레티우스, 쿠인틸리아누스 등의 저작을 발굴했다.

베스파시아노는 플라톤, 키케로, 리비우스 등 고대의 사유에서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배우려 하는 이들을 위한 꿈의 구현자였다. 피렌체 인문 공동체에 속한 그는 오류 없는 고전 판본을 찾아내, 단순하고 명료한 인문주의자 서체로 이뤄진 품질 높은 필사본을 제작하는 최고 전문가였다. 서재가 구축되고 도서관이 만들어질 때마다 늘 베스파시아노가 있었다. 그는 평생 1000권이 넘는 필사본을 제작한 앎의 전파자였고, 그의 서점은 문학 및 학술 모임이 열리는 지성의 장이었다.

베스파시아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동방의 현자들이 플라톤 전집 등 ‘잊힌’ 지식을 퍼뜨릴 계기를 제공했고, 그에게 고전을 수습해 보전할 임무를 부여했다. 베스파시아노는 고전을 보급함으로써 무지의 어둠을 떨치는 데 앞장섰으나, “새롭고 신성한 글쓰기 방식”인 인쇄술의 도전에 따라 점차 힘을 잃었다. 책의 비용이나 제작 속도보다 판본의 정확성과 소장 가치를 더 중시하는 필사본 고객들은 점차 줄어들었고, 마침내 1480년 “다른 부양 수단 없이 책만 붙들고 있는 사람은 가난하다”라는 말을 남긴 채 그는 쉰여덟 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15세기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필사본 제작자인 베스파시아노의 삶은 피렌체 인문주의와 운명을 같이했다. 그와 친구들은 파열되고 불행한 시대를 고대의 지혜로 밝힘으로써 몰아내기를 희망했다. 필사본 제작은 끝내 멈췄으나, 그가 남긴 책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르네상스의 속살을 속속들이 알려준다. 640쪽, 3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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