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비판인가, 풍자로 포장된 혐오인가[핫이슈]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3. 1. 1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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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풍자하는 ‘굿바이:전’에 전시 예정이던 그림. [사진 = 페이스북 캡쳐]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던 2010년 어느 날. 서울 종로, 을지로, 남대문 등에 부착돼 있던 G20 홍보 포스터에 난데없이 쥐가 등장했다. 주요 거리에 붙은 공식 포스터에 누군가 쥐 그림을 그려 넣어, 포스터 속 청사초롱을 쥐가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정치적 메시지나 문구가 적히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통령을 겨냥한 것임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포스터에 쥐를 그린 사람을 긴급체포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영장은 기각됐고,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중도덕을 침해하는 경우까지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었다. 다만 법원은 G20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니었고, 쥐 그림이 보는 이에 따라 해학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점, 새로운 예술 장르로서 보호받아야 할 측면 등을 고려해 실형이 아닌 벌금형을 택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은 풍자와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은 2017년에도 재연됐다. 당시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 ‘곧, 바이(Bye)! 展’을 개최했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나체 상태로 표현한 작품이 논란이 됐고,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표 의원에게 당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2023년에도 대통령 풍자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지난 9일 밤 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릴 예정이던 ‘Good, bye 展 in 서울’ 전시 작품을 철거했다. 최강욱·황운하 등 민주당 처럼회 의원 등이 공동 주관한 전시에선 상의를 입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함께 큰 칼을 휘두르는 그림, 술병 옆에 누운 윤 대통령 위에 김 여사가 올라앉은 그림, 곤룡포를 입은 윤 대통령이 옷을 열어젖히고 있는 그림 등 3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림 내용을 확인한 국회사무처는 전시 전날 주최 측에 자진 철거를 요청했다.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 회의실 및 로비 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규를 전시 철회 근거로 제시했다. 주최 측이 철거를 거부하자 국회 사무처가 강제 철거에 이른 것이다. 시정요구와 철거는 민주당 출신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명의로 이뤄졌다.

예상대로 정치권은 공방을 벌였다.

전시를 준비한 민주당 의원들은 “정치 풍자인데, 국회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다”고 반발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 누가 봐도 저질스러운 정치포스터이고, 인격모독 비방으로 가득 찬 것”이라며 민주당 윤리심판원에 12명 의원에 대해 윤리 심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 추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권력자에 대한 문제 제기나 풍자는 자유로워야 한다. 1988년 미국을 뒤흔든 허슬러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공적인 인물이나 정책에 대해 비판은 그 대상에 대한 증오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도 허용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비판의 동기를 문제 삼아 불이익을 준다면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 풍자에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국민 정서나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한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거친 풍자로 상대를 조롱하고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헌법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풍자와 패러디는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야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직설적인 풍자가 불러일으키는 소모적 논쟁을 지켜보는 국민은 피로하기만 하다. 생산적인 통찰이 뒤따르는 건전한 풍자를 기대하는 무리일까.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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