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컨설팅은 어쩌다 '빌라왕'과 엮였나
공인된 자격증 없는 사람들 활개
법적 사각지대서 분양 업무
최소한의 법적 장치 마련해야
국내에 '부동산 컨설팅'이 등장한 건 1980년대 말이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투자를 위한 컨설팅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부동산 컨설팅 분야엔 전문성도, 법적 근거도 없다. 이 때문에 서울과 인천에서 불거진 깡통전세 사기와 빌라왕의 등장은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부동산 컨설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1988년. 우리나라에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처음 생긴 해다. 이 시점부터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컨설팅' 방식의 사업이 퍼져 나갔다. 이 무렵 탄생한 부동산 컨설팅은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개발ㆍ처분하는 것을 조언하는 서비스였다. 부동산 투자를 위한 조언이 그 자체로 서비스 상품이 된 거였다. 관련법까지 개정됐다.
1993년 부동산중개업법(현 공인중개사법)에 9조 2항이 신설되며 '부동산 이용ㆍ개발의 지도ㆍ상담'을 공인중개사가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공인중개사에게 컨설팅을 허락한 셈이었다.
4년 뒤인 1997년에는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이 주도해 '한국부동산컨설팅업협회'가 만들어졌고,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이를 자산운용전문인력기관으로 지정했다.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되던 시기만 해도 '부동산 컨설팅'은 전문성을 갖춘 단어였다는 얘기다.
그랬던 부동산 컨설팅이 최근 거대한 전세사기와 엮였다. 전세 보증금보다 집값이 내려가는 '깡통전세' 수백건을 만든 소위 '빌라왕'들이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대표거나 직원이었다는 수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한때 '전문가'의 영역이던 부동산 컨설팅은 어쩌다 '전세 사기'의 한복판에 서게 된 걸까.
'부동산 컨설팅'이 전문성을 잃은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언급했듯 건설교통부가 공인한 교육기관이던 '한국부동산컨설팅업협회'는 2003년 한국부동산투자자문협회로 이름을 바꾸며 부동산 컨설팅이란 명칭을 완전히 떼냈다. 대신 '리츠(부동산투자회사ㆍReal Estate Investment TrustㆍREITs)'의 투자를 돕기 위한 부동산투자자문업으로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다.[※참고: 부동산투자자문업으로 등록하려면 영업인가를 받아야 한다. 인가 조건 중 하나는 전문자산운용인력 3명 보유다.]
이를 기점으로 '부동산 컨설팅'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명칭이 됐다. '부동산 컨설팅'이나 '공인중개업' 모두 국세청이 분류하는 '부동산 중개업 및 대리업' 업종 코드를 받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업하기 위해선 공인중개자격증이 필요하다. 반면 '부동산 컨설팅'이란 이름을 쓰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일례로, 구인구직 플랫폼에 '부동산 컨설팅'이란 용어를 입력하면 '자격 무관'을 내건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숱하게 나온다. 법 전공자를 찾거나 경력을 요구하고 기업을 대상으로 부동산 컨설팅을 꾀하는 업체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의 부동산 컨설팅 업체는 '오피스텔ㆍ신축빌라ㆍ도시형생활주택' 분양 업무를 하기 위한 직원을 찾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부동산 컨설팅 업체'는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공인중개사무소와 투자자문업체는 업체명만 검색하면 자격을 갖춘 곳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망이 만들어져 있다. 최근엔 공인중개사무소 내 미자격 직원의 계약이 빈번해져 논란이 일자 자격 없는 중개보조인까지 열람할 수 있도록 됐다.
반면 '부동산 컨설팅'은 그렇지 않다. 등록 조건이 없으니 업체명을 조회할 수 있는 곳도 없다. 그렇게 '부동산 컨설팅'은 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됐다.
이런 '부동산 컨설팅'이 스며들어간 곳 중 하나가 '빌라 분양'이다. 일례로, 국내 부동산 광고 1위 플랫폼 직방은 2021년 부동산 컨설팅 업체와 '신축 빌라 매물을 올리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빌라 분양을 원하는 이용자가 매물 광고 상단에 있는 신축 빌라를 선택하면 직방과 계약을 맺은 '부동산 컨설팅' 업체와 함께 계약을 진행했다.
청약 시스템을 통해 분양하는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청약 통장이 필요 없다. 그 때문에 분양을 훨씬 쉽게 받을 수 있다. 아파트와 비교하면 다품종 소량 생산이어서 빌라를 분양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컨설팅 업체도 그만큼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문제'가 생기는 빌라 분양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주택 건설업체가 토지를 구해 빌라를 만든다. 완공되면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끼어들어 전세 세입자를 먼저 구한다. 빌라를 사려는 사람을 찾는 게 훨씬 어려워서다. 이 과정에서 대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세입자들의 문턱을 낮춘다.
이렇게 전세 세입자를 구하면 전세 보증금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에서 주택을 매수할(분양받을) 사람을 찾는다. 컨설팅 업체 관계자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이때 명의를 대여해준 사람들이 지금 문제가 되는 '빌라왕'들이다. '빌라왕'들과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연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빌라 분양'에 끼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개사가 아니어도 '분양 업무'를 할 수 있어서다. 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빌라 분양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활동해도 불법이 아니다.
공인중개업무가 자격증이 필요한 이유 또한 별다른 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 자산(2021년 기준ㆍ금융투자협회)의 64.4%를 차지하는 비금융자산은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부동산 거래망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국민 재산권 보호가 가능하다. 공인중개사법에도 이를 입법 목적으로 명시해뒀다. 그러나 신축 빌라 분양 업무를 맡는 부동산 컨설팅은 관련법조차 없는 상황이다.
공인중개업계 관계자는 "예전에 투자 자문을 위해 설립됐던 부동산 컨설팅 회사들이 최근 들어 신축 빌라 분양에 깊숙하게 개입하며 부작용이 생긴 셈"이라며 "중개 자격증을 보유한 공인중개사가 컨설팅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컨설팅 업무와 관련한 공인중개사협회 내부 규정 등은 따로 없다"고 꼬집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에서 '빌라왕'이 나온 건 놀랄 일이 아니다. 경고음은 예전부터 울려왔다. 법이 보호해야 하는 '국민 재산권'은 이 상태로 정말 지킬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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