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가난한 이들의 우주선이 되었다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3. 1. 1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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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남동쪽 작은 도시 이브리쉬르센.

이곳의 행정을, 1961년 그때는 프랑스 공산당이 맡고 있었다.

건물이 점점 낡아가는 동안 주민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사라지기 전 이곳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 건축가들이 촬영팀을 섭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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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의 비장의 무비] 〈가가린〉
감독: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트로윌
출연:알세니 바틸리, 리나 쿠드리

프랑스 파리 남동쪽 작은 도시 이브리쉬르센. 이곳의 행정을, 1961년 그때는 프랑스 공산당이 맡고 있었다. 수도 파리 턱밑에서 사회주의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할 어떤 상징이 필요했다. 13층 높이에 384세대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단지를 건설한 이유다.

2년 만에 완공된 그곳에 특별한 축하 손님을 모셨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비행하고 돌아온 최초의 인간. 옛 소련의 영웅 유리 가가린. 붉은 벽돌로 지어올린 건물 테라스마다 사람들이 구경 나와 환호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 ‘가가린 시티’라고 이름 지은 단지 복판에 그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날 그곳에서 ‘가가린’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고 ‘미래’를 호출하는 콜사인이었다.

시간은 먼지처럼 쌓여갔다. 공산당은 힘을 잃고 동네는 쇠락했다. 건물이 점점 낡아가는 동안 주민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결국 2014년, 정부가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사라지기 전 이곳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 건축가들이 촬영팀을 섭외했다. 파니 리에타르와 제레미 트로윌 감독의 카메라에 가가린 시티의 안과 밖이 담기기 시작했다.

빠짐없이 담아낸 다큐멘터리에 빠진 게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야기. 각자가 만들어낸 모두의 이야기. 이곳에 살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던 주민들이 거실에, 부엌에, 계단에, 그리고 우편함과 뒷마당에 흘리고 떠난 삶의 구체와 총체. 그것까지 담아내려면 극영화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은 철거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철거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만든 영화 〈가가린〉의 주인공은 가난한 10대 소년 유리(알세니 바틸리). 하나둘 떠나가는 가가린 시티에서 하루하루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아간다. 자신의 집을, 이웃의 단지를, 모두의 기억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혼자 힘껏 지켜내기로 한다. 그렇게 ‘유리’는 ‘가가린’을 가난한 사람의 우주선으로 만들어간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따뜻한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담아낸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데뷔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칸 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 두 감독은 이제 막 철거가 끝난 옛 가가린 시티 근처 극장에서 특별 시사회를 열었다. 실제 가가린에 살던 주민들을 스태프로 혹은 배우로 고용해 완성한 영화를 보며 모두 함께 웃고 울었다.

상영이 끝난 뒤 “이 영화에 참여한 분들은 무대로 올라와주십시오”라고 소리쳤더니, “모든 관객이 무대로 올라와 객석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라며 감독들은 한 인터뷰에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가끔 그날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텅 빈 객석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있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자리’에서 상실감 대신 충만감을 느낀 건 그때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님 부고가 전해졌다. 밀려나고 쫓겨나고 잊히는 ‘난장이’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작은 공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유리’ 역시 우리 곁에 있을 거라고.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라고. 영화 〈가가린〉이 지금, 내게 이야기하고 있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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