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소화도 못 시키는 일 쌓는 국회…정치영역 확 줄여야"[만났습니다①]

김기덕 2023. 1. 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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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특위 위원장
"국회·행정부, 내재적 한계 인정하고 역할 재조정"
"與野, 포퓰리즘·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정쟁" 쓴소리
개헌 이슈에 국가 의제 함몰 우려…시스템 개혁 강조

[대담=이승현 정치부장·정리=김기덕 기자] “우리나라 국회는 처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시장, 군수, 시골 면장이 해결할 문제까지 다 떠안고 있다. 중앙정부나 국회는 본인이 소화도 못 시키는 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지 말고, 구조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많은 권한을 지방정부나 지방 의회, 시민 사회로 내려줘야 한다.”

김병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국민대 명예교수)은 최근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민간 시장이나 시민단체, 지방정부가 알아서 할 일도 정치권이 뛰어들면서 중앙정치의 영역에 포함돼 있다”며 “국회가 정상화되려면 국회 스스로가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이같이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국내에서 지방 자치·분권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인 1994년에 한국지방자치론이라는 책을 저술해 대한민국 지방자치론의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실장을 맡아 사회·경제 정책을 총괄하며 충청권 수도 이전을 주장, 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을 토대를 닦았다. 또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인수위에서 활동하는 등 여야 진영을 오가며 국내 지방자치와 균형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김병준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방인권 이데일리 기자)
그는 현 정치권이 국민들을 대립 구도로 이끌고 있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재 국회를 보면 좌파 우파로 불리는 진보, 보수 모두 엉터리다. 포퓰리즘이나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제로섬 게임을 하면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현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시장 체제에서 공정한 분배 담론, 합리적 성장의 담론을 담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선거구제 개편이나 개헌과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김 전 위원장은 “정당 개혁이나 권력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선거구제나 개헌을 논의하면 모든 이슈가 튀어나오며 그 속에서 국가적 의제가 함몰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 제도 자체를 바꾸겠다고 매달리면서 본질적인 정치개혁 이슈를 모조리 삼켜버리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치개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김 전 위원장은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누구를 뽑을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잘될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운전기사만 바꾼다고 잘 굴러갈 수 없듯이 본질적으로 잘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전 위원장과 일문일답.

-여야 대치 상황이 심각한데 요즘 정국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국회는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가 있어서 전문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가 없다. 국회가 처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지방 정부인 시장, 군수, 면장 처리하는 것을 모든 맡으려니까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처럼 모든 법안을 실어 나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 정치 구조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국회나 행정부가 본인들이 가진 권한을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소화도 못 시키는 음식을 뷔페식당에서 마구 쌓아놓은 격이다.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하루 3끼 정도인데 30끼를 먹으려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래서 일이 안되니까 오히려 국회에서 서로 ‘너 때문에 안된다’며 싸움을 하고 있는 거다. 정치의 영역을 줄여야 한다.

-결국 지방 분권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시민들의 눈에는 지방의회가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지방의회에서는 국회의원들한테 줄세우기식 공천을 받아서 선출되는데다 권한 자체가 약하다. 사실 제대로 된 지방자치다운 지방자치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지방자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시민사회가, 지방정부가 할 일은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하고, 대통령이나 의회는 보다 집중해야 할 과제나 어젠다를 잡고 일해야 한다.

-해외에 참고할만한 모델이 있나.

△연방제이긴 하지만 미국 의회에서는 정말 중요한 의제만 다룬다. 각 주지사들이 맡아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중앙 의회격인 연방 의회에서 끼어들지 않는다. 만약 연방 의회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각 주 의회에서 법안을 만들어서 실행한다. 그러다 보면 바로 옆의 주에서도 실행하고 점차 전국적으로 번진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하르츠 개혁은 노사정 위원회가 합의를 보고 결정했다. 정부는 사회를 보고 중재하고, 노사가 합의를 보면 해당 안을 의회가 존중해서 통과시키는 식이다.

-해묵은 과제지만 최근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다고 본다. 하지만 어렵다. 그래서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막상 뚜껑을 열면 모든 사회적 이슈가 나오면서 정치적 에너지가 손실되고 모든 이슈가 함몰될 수 있다. 이왕 할거면 국회 개혁이나 기존 권력구조 제도를 바꾸는 편이 맞다고 본다.

-기존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개헌에서 논의할 대통령 4년 중임제 문제, 책임 총리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시장과 국가와의 관계,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이다. 소위 비대한 국가 권력을 시장과 시민사회에게 돌려주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배임죄 항목을 줄이고 제대로 손만봐도 시장 경제가 달라질 수 있다.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권력구조를 바꿔도 소용없다.

-헌법 개정 없는 정치 개혁이 가능한가.

△현행 헌법을 보면 국무총리가 내각을 통괄하고,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 해임 건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과의 권력 관계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총리에 대한 임명·해임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임총리제가 무색하다. 국회에서 총리 추천을 하거나 집권여당에서 추천하도록 바꿔도 자연스럽게 총리 권한이 강화되고 내각제 요소를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은 어떻게 보는지.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정당개혁을 논의하면서 선거에서 어느 당에 유리한지 따지고 있다. 제도는 운영하기 나름이다. 똑같은 소선거구제라고 해도 공천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윤 대통령은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보는지.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과제도 그렇고 자유와 공정이라는 합리적 보수를 추구해야 할 화두를 잘 던졌다고 본다. 적절한 분배 담론이 담긴 자유주의 화두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의회권력이 그대로인데다 집권여당이나 내각에서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가닥을 잡지 못해 제대로 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윤 대통령을 평가할 때 협치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 정부가 가고자 하는 정의와 공정 질서, 자유와 분배를 정확히 얘기하고 야당과 같이 갈 수 있는지 것이 뭔지, 못할 것이 뭔지를 따져봐야 한다.

김병준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방인권 이데일리 기자)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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