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 확장하고 도로 건설…사라지는 제주 어촌 '소통의 빛'

제주CBS 고상현 기자 2023. 1. 1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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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근대 기억들③]제주 도대불
관 주도 현대식 등대와 달리 주민이 직접 만들어
일제강점기 야간 조업 시작하자 안전 위해 세워
송진 많은 소나무 태우거나 꽹과리로 위치 알려
근대 이후 만들어진 제주의 대표적 해양문화유산
마을마다 형태 제각각…안정성과 기능성에 초점
1970년대 전기 들어오며 점차 등대 기능 상실
포구 정비하고 해안도로 건설되며 대부분 사라져
편집자 주
제주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근대건축 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사회적 혼란기, 국내 대표 관광지로 거듭난 개발추진기까지. 각 시기별 건축물은 제주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자산입니다. 하지만 개발 광풍 속 건축물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그 가치마저 잊히고 있습니다. 제주CBS는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지는 제주 근대건축물을 격주로 소개합니다. 13일은 세 번째로 '제주의 민간등대 도대불' 이야기를 전합니다.

1915년에 세워진 북촌리 도대불.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고상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제주 첫 호텔 동양여관…명성 사라진 자리 남은 건 삶
②개발 광풍에도…제주 일식주택 100년간 서 있는 이유는
③포구 확장하고 도로 건설…사라지는 제주 어촌 '소통의 빛'
(계속)

"옛날에는 바다에 나무배 타고 가서 고기 낚았거든. 제주 해안에는 암반이 많은데, 그때는 전기도 안 들어올 때라. 캄캄한 밤 배가 부서지기 쉽지. 도대불이 지금의 등대 역할을 했어"
북촌리에서 나고 자란 고만옥(81) 할아버지는 마을 해안가에 서 있는 도대불에 대해 이같이 회상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마을 주민이 도대불을 세웠다.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형태의 등대다. 과거 제주 해안 곳곳에서 밤바다를 환하게 밝혔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밤바다 환히 비추던 도대불…어민들 소통의 빛

제주 도대불은 관 주도의 현대식 등대인 산지등대와는 달리 어부와 마을 주민이 직접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야간에도 고기잡이를 시작하면서 어민들의 안전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바다에서 볼 수 있도록 지대가 높은 곳에 세워졌다. 대부분 제주 화산석인 현무암을 이용해 쌓았다.

사용 용도로는 어두운 밤 솔칵(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을 태워 배를 안전하게 안내하기 위해 불을 피웠다. 안개가 있는 날에는 쇠그릇과 꽹과리를 두들겨 소리를 내 포구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다. 낮에는 조업 나간 어선들의 근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망대' 역할을 했다.

고여생(87) 할아버지는 신촌리 도대불을 떠올리며 "'물반 고기반'일 정도로 고기를 많이 낚았다. 그때는 배들이 목선이니깐 밤에는 위험했다. 도대불 위에 석유로 불을 피워서 입구를 알려줬다. 어부들이 밤에 고기 낚아 오면 도대불에 불피워준 사람에게 돈 얼마씩 모아서 줬다"고 기억했다.

북촌리 도대불 상부에 놓인 건립비. '어즉□기□등명대 대정사년십이월건'라고 적혀 있다. 건립비는 1915년도 12월에 세워졌으며 도대불을 '등명대'로 지칭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


도대불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돛대처럼 높이 켠 불이라는 뜻의 '돛대불'에서 유래했다는 설, '뱃길을 밝히는 불'에서 전해졌다는 설, 등대의 일본어 발음인 '도우다이'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있다. 북촌리 도대불에 있는 비문에는 또 다른 이름인 '등명대'라고 적혀 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박찬식 관장은 "도대불은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에서 근대 이후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양문화유산이다. 현대식 등대 이전 과도기에 사용됐던 등대"라고 설명했다.

"어민들이 쌓은 도대불의 경우 야간 조업을 떠난 어선을 위한 것이었다. 일제가 개입한 것도 있다. 고산리 도대불이 그렇다.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이 포구에 들어오기 어려워서 차귀도 쪽에 머물고 있으면 종선을 이용해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도대불이 등대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마을마다 형태 제각각…"안정성과 기능성에 초점"

도대불의 형태는 마을마다 제각각이다. 유형별로 크게 방사탑형, 연대형, 사다리형으로 분류된다. 불을 피우기 위한 계단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여기서 더 세부적으로 나뉘기도 한다.

사다리형 도대불은 일본의 옛 등대와 유사한 형태다. 대표적인 게 제주시 고산리 도대불이다. 가로세로 180㎝의 기단과 280㎝ 높이의 본체, 그리고 가로세로 40㎝ 크기의 점화대로 이뤄졌다. 잘 다듬어진 돌과 함께 아랫부분에서부터 완만하게 굽어지며 위로 올라가는 곡선이 특징이다.

김녕리 도대불. 고상현 기자


김녕리 도대불은 원래 상자모양이었다. 하지만 1960년 태풍으로 허물어지면서 이듬해 지금의 방사탑형으로 만들어졌다. 이 형태가 거센 바다 바람의 저항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기 때문이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몸체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돌출형 계단이 설치된 점도 눈에 띈다.

제주에 최초로 지어진 북촌리 도대불은 연대의 형태다. 정방형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 좁아지는 구조다. 중앙에는 계단이 놓여 있다. 꼭대기에는 원래 목대가 설치됐지만, 나중에는 유리 상자에 카바이드를 넣어 불을 밝혔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1973년까지 바다를 환히 비췄다.

제주대학교 건축학과 김태일 교수는 "도대불은 쌓은 사람의 손맛에 따라서 다른 모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건축 지식을 배워서 쌓은 게 아니어서 오히려 획일적이지 않다. 도대불은 수평적인 게 아니라 수직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에 안전성과 기능성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다리 지으며 훼손하고 포구 확장하며 사라지고

제주 어부들을 안전하게 안내한 소통의 빛이자,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주는 희망의 빛이었던 도대불은 1970년대 초반 마을마다 전기가 공급되면서 점차 자리를 잃었다. 등대로서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항만시설 확장과 해안도로 건설 과정에서 도대불은 없어지거나 훼손됐다.

현재 제주 해안에 남아 있는 도대불은 17곳이다. 원형 그대로 남은 것은 제주시 북촌리‧고산리‧김녕리‧우도‧서귀포시 보목동 도대불 6곳뿐이다. 뒤늦게나마 이 도대불들은 지난 2021년 7월 '제주도 근현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됐다. 나머지 11곳은 파괴됐다가 복원된 것이다.

제주 해안을 돌며 직접 도대불을 연구한 제주문화원 백종진 사무국장은 "과거 제주에는 30여 곳에 도대불이 있었다. 하지만 포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도두동 주민센터 화단 구석에 놓인 도대불 건립비. 고상현 기자


실제로 북촌리 도대불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제주시 도두동 도대불은 포구 정비 과정에서 없어졌다. 건립비만 지난 2012년 해안가에 나뒹구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주민센터에 갖다 줘서 남아 있다. 이마저도 현재는 주민센터 직원으로부터 존재조차 잊혀진 채 화단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훼손된 사례도 있다. 큰 원형의 기단과 함께 사다리꼴 본체가 특징인 제주시 신촌리 도대불은 다리를 놓으면서 상단 부분이 사라졌다. 현재 하단 부분만 다리 한축을 지탱하고 있다.

파괴됐다가 다시 만들어진 도대불 역시 원형 그대로 복원된 경우는 드물다. 본체의 잘록한 곡선이 특징이었던 제주시 애월리 도대불은 현재 잘록한 선은 사라져버렸다. 제주시 용담동 도대불 역시 기단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고 본체 역시 둥그렇게 만들면서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백종진 사무국장은 "복원하려면 장기적으로 고증해서 원형에 가깝게 해야 한다. 하지만 행정에서 예산 처리 때문에 조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잘못 복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리를 지으면서 도대불이 훼손됐다. 빨간 원이 남아 있는 일부 모습.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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