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주 머리띠 두르자 年 60조 증발…외국인 투자자도 떠난다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노동개혁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를 공정과 법치의 노동개혁 원년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는 기업의 힘만으론 갈 수 없다. 노조의 탈법적 몽니가 횡행한 나라에 국내외 어떤 기업이 마음놓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뿐 아니라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도 함께 고민할 때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1인당 GNI는 3만5373달러(4048만원)에 달했다. 한국의 1인당 GNI는 지난 2017년 3만1734달러로 처음 3만달러대에 진입했는데 지난 4년 동안 4000달러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당정은 지난해 말 '2023년 경제정책방향 당정협의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까지 1인당 GNI를 4만달러까지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2021년(3만5373달러)을 기준으로 할 때 향후 6년 동안 1인당 GNI를 약 5000달러 늘리겠다는 의미다.
당정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금·노동·교육·금융·서비스 등 5대 부문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며 우선순위가 노동개혁에 있음을 강조했다.
정부는 거대 노동조합의 잦은 불법 파업 등 이른바 '불합리한 노동관행'이 우리 경제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지난해 금속노조의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불법 점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에 강경하게 대응한 것도 이런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매년 노동계의 파업으로 막대한 경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6월과 11~12월 있었던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직·간접 경제 손실액이 10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생산·출하 차질에 따른 직접적 피해액과 수출·투자 등에 미친 간접 피해액을 모두 고려한 수치다. 전주용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등은 지난 2019년 펴낸 '리츠-스폴딩(Ritz-Spaulding) 투입산출모형을 활용한 화물연대 파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에서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연간 60조4058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잦은 불법 파업이 외국인 투자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이 외부 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 138개 주한외국기업 중 54.3%가 한국의 노사 관계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노조가 개선해야 할 관행으로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투쟁적 노조활동(46.4%) △상급 노동단체와 연계한 정치적 파업(30.4%) 등을 꼽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외국인 투자를 가장 저해하고 주저하게 만든 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노동시장의 법치주의, 준법성이 확립되지 않는 것"이라며 "(노조의) 법 위반은 국가가 확실하게 지켜줘야 투자자가 예측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고 지난 1년 동안 미흡하지만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사 문제 해결 방식을 갈등·투쟁이 아닌 대화·타협 중심으로 전환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등 노사 문화 전반을 개선해야 총요소생산성(TFP) 제고를 통한 경제 성장, 나아가 1인당 GNI 4만달러 달성도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TFP는 총생산에서 노동·자본의 직접적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 효율성, 성장잠재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자본·노동을 제외한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TFP로 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TFP 증가율(전년대비)은 2017년 2.6%, 2018년 2.3%, 2019년 1.2%, 2020년 0.7%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합법적인 파업은 당연히 보장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불법 파업이 많아서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결국 개혁을 해야 하고 이는 곧 법치대로 가면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원리·원칙을 확립해야 근로자 간 소득 불평등 해소 등도 가능하다"며 "다만 정부는 합법적인 부분까지 제재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독일,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들은 노사 간 사회적 대타협 등을 통해 선진적 노동시장과 노사 문화를 구축했다.
오늘날 유럽 최강의 경제대국 독일도 통일 직후인 1990년대엔 연간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치는 혹독한 저성장과 고실업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6년 독일 정부는 노사와 '일자리를 위한 연대'(BundnisfurArbeit) 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고령근로자를 시간제근무로 전환하고, 청년실업자를 시간제근무로 채용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유도했다.
2001년엔 독일 노조가 실업자 등록조건을 강화하는 '적극적 일자리법'(Job-aktivgesetz)과 2002년 임시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하르츠법(Hartzgesetz)을 받아들이는 양보를 하기도 했다.
노사가 자발적으로 임금 인상 없이 근로시간을 늘린 사례도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의 경우 2004년 금속노조(IGMetall)와 서독지역 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을 향후 28개월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가로 근로자 10만3000명의 고용을 2011년까지 보장받고, 기존근로자들은 1인당 1000유로의 보너스를 1회만 지급받게 됐으며 신규 근로자들의 임금은 기존 임금에서 10% 삭감키로 했다.
프랑스에서도 실업률이 급등한 1993년 정부와 노사가 근로시간 단축, 변동 근무 시간제 도입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고 노동비용을 감축하는 내용의 '5개년법'에 합의했다.
2007년엔 프랑스의 대표적 사용자단체인 '경영자협회'(Medef)가 제안한 '노동시장 현대화를 위한 노사협약'에 대해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는 △고용안정성 확보 △해고조건 완화 △기업수요에 대한 노동력의 상시 연계를 위한 개별서비스 확보 등 프랑스식 노동개혁에 해당한다.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덴마크는 1980년대 말 이후 경기침체와 실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노사가 국가 경쟁력 향상이 고용창출의 첩경이란 인식을 함께 하고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다.
덴마크는 소위 '황금삼각형'이라고 불리는 △유연한 노동시장 △관대한 복지체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목표로 1980년대 9년이었던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1994년 7년으로, 1999년에는 다시 4년으로 단축했다. 이러한 조치로 1980년대 '유럽의 병자'로 평가되던 덴마크 노동시장은 '덴마크의 기적'이란 평가를 받게 됐다.
스웨덴도 대표적인 노사간 사회적 대타협 사례로 알려져 있다. 1931년 전국 총파업 기간, 군인들의 발포로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사간 극한대립이 시작될 무렵 정치권이 움직였다. 1932년 집권한 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우파 농업민주당(농민당)에 도움을 요청했다.
양당은 특별법을 만들어 기업은 해고를 못하게 하고, 노조는 파업을 하지 않도록 했다. 이후 노사는 2년간 장기 전략회의에 들어갔다. 긴 협상 끝에 양측은 1938년 12월 24일 '살트셰바덴 협약'에 서명했다. 살트셰바덴 협약에는 노조가 사용자의 배타적 권리를 문제 삼지 않는 대신 기업 이윤의 정당한 몫을 임금 인상 등의 형태로 받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희성 강원대 교수는 "일본 대기업 노조 위원장이 '노사관계는 근본적으로 기업이 잘 돼야 조합원인 근로자가 행복하다'고 한 적이 있다"며 "기업이 잘 운영되지 않으면 결론적으로 조합원, 즉 근로자가 일자리를 상실하고 지역사회가 망가지며 결국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조도 기업의 동반자이자 파트너라는 의식으로 일방적 주장보다는 노동생산성 향상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세종=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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