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제3자 해법’ 논란…“법적으로 무효 가능성도”

정인환 2023. 1.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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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윤석열 정부 ‘제3자 변제’ 공식화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과 야당 국회의원 등이 12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연 ‘윤석열 정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반대! 비상시국선언’에서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양금덕 할머니의 자서전 를 들고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 방법이 졸속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정부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가해 전범기업의 사죄와 배상 참여 없이 제3자(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를 통해 이행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협력 기조를 강화하며 강제동원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고 하지만, 피해자 쪽이 강력 반발하고 법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 논란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2일 외교부와 정진석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강제동원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법정 채권’이라고 표현했다. 또 법률 검토를 거쳐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강제동원 문제가 일제의 불법적 식민지배에서 파생됐음에도 2018년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민사 사건’이란 측면만 부각시킨 셈이다.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왔고 판결 채권자들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게 돼 있다.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 충돌 없이 채권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방안을 지금 깊이 강구하고 있는 중”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를 채권자로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취임 100일 기자회견)과도 상통한다.

서 국장은 이어 “제3자의 변제가 이뤄질 경우 지원재단이 바람직한 주체”라고 했다. 이는 정부가 기존에 언급해온 이른바 ‘제3자에 의한 중첩적·병존적 채무 인수’를 최종 해법으로 여기고 있음을 뜻한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배상 책임을 진 일본 가해 전범기업의 ‘채무’를 ‘제3자’인 지원재단이 인수한 뒤,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에 기부금을 걷어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는 방식이다.

특히 서 국장은 “일본 정부의 별도 사죄와 가해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는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 쪽이 그동안 요구한 두 가지 핵심 전제를 모두 비껴가겠다는 얘기다. 심규선 지원재단 이사장도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의 기금을 받겠다”며 구체적인 이행 방안까지 제시했다. 지원재단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을 사업 목적에 포함하는 쪽으로 정관을 변경해 지난 9일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는 등 ‘제3자 채무 인수’를 위한 사전 준비까지 마친 바 있다.

서 국장은 “이 문제가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10년이 지났다. 확정 판결 받은 15명 중 생존자는 3명”이라며 “이번 정부도 대충 협상하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정부가 용기 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토론회에서 밝힌 것은 정부의 최종안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전날 박진 장관은 이번 토론회를 해법 마련을 위한 “마지막 중요 행사”라고 규정했다. 한-일 당국 간 협의를 거쳐 ‘일본의 참여 없는 3자 변제’ 방안이 곧 공식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피해자 단체 쪽은 “가해자의 사죄도, 배상 참여도 없는 정부 해법은 굴욕적이며 몰역사적”이라고 비판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한국 기업의 돈으로 한국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키겠다는 정부안은 일본 쪽에 어떤 부담도 지우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안의 법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원재단이 배상을 하려면 일본 가해 기업과 채무 인수 약정을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 쪽은 채무의 존재(불법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임 변호사는 토론회 뒤 기자들에게 “3자 대위변제 경우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채무 변제를 막을 수 있다”며 “진의가 아닌 의사표시는 무효”라고 말했다. 채무 인수 약정의 법적 효력을 다툴 수 있다는 얘기다.

지원재단이 정관을 변경한 것을 두고는 “시행령으로 법률을 무력화시킨 사례의 전형”이란 평가가 나온다. 최봉태 변호사(법무법인 삼일)는 “재단의 설립 근거인 ‘강제동원조사법’은 ‘사망한 자를 추도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평화와 인권을 신장’하는 것을 사업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모법이 부여한 권한을 벗어난 정관 변경은 무효”라고 말했다.

재단이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 쪽에 기금을 요구하는 것은 “권한 밖의 불법행위”란 지적도 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불법 강점이며, 거기서 파생된 강제동원은 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재단은 청구권 협상 수혜 기업 쪽에 기금 참여를 요청할 법적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해당 기업이 재단의 요청으로 기금에 참여하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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