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골목 끝에서도 태양은 떠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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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뀐 숫자에 익숙하지 않다.
전깃줄로 어지러운 까만 골목 끝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골목 끝에서, 동그랗게 봉긋 솟는 해님을 볼 수 없어도 일출이다.
일부러 골목길을 돌아 재래시장에 가고 우체국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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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뀐 숫자에 익숙하지 않다. 출근해서 다이어리에 날짜를 적을 때 2022년이라 쓰다 지우곤 한다. 손에도 눈에도 익지 않은 탓이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 영하 12도였는데 새벽에 나갈 일이 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길이 미끄러워 발 밑만 보고 걷는데 번쩍 스치는 빛에 고개를 들었다. 전깃줄로 어지러운 까만 골목 끝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진 두어 장을 찍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밤을 새워 산으로, 바다로 일출 명소를 찾아 다녔다. 쫓아가 맞이하지 않으면 나를 외면하기라도 하듯 열정적이었다. 어느 해엔 신바람이 나서 달려가고, 어느 날은 허둥지둥 어떤 의식을 치르듯, 내가 가지 않으면 해가 뜨지 않는다며 유난을 떨었다.
이제 달려갈 열정도 사라졌고 체력도 밤을 새우기 버겁다. 골목 끝에서, 동그랗게 봉긋 솟는 해님을 볼 수 없어도 일출이다.
아파트는 현관문만 닫으면 절간이 된다. 그 안에서 푸닥거리하는지 동안거에 들었는지 알 수 없다. 휴대전화 하나면 다 되는 세상,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불편할 일이 없다는 것이 정이 그리운 우리는 아쉽고 MZ세대는 당연하다.
일부러 골목길을 돌아 재래시장에 가고 우체국도 간다. 느린 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담장 안을 기웃거린다. 멋스러운 향나무와 다양한 화초들로 화려한 정원을 흘깃거리고, 마당에 수세미 매달린 집 앞에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담벼락 아래 맨드라미가 줄지어 있던 집도 있었다. 골목 중간 공터에 블루베리가 익어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마른 가지에 눈만 소복하다.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각종 채소를 심었던 집은 이웃과 소통할까? 오래전엔 낮은 담으로, 열린 대문으로 정으로 버무린 음식이 오갔지만, 지금은 과하게 튼튼한 대문이 차단벽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는 집도 없는 골목길을 돌아보곤 한다. 그 길엔 그리운 유년이 깃들어 있다. 빙판에 연탄재가 나뒹굴지 않아도 그 길을 가다 보면 툭툭 튀어나오는 기억에 뭉클하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 말없이 바라보았지'
눈을 감고 '골목길'을 듣는다, 김현식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초라했지만 꿈으로 가득하던 그 시절 골목이, 사람들이 보인다. 2023년 여기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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