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 이즈 클로징" 포켓몬 대회 우승자 '이지석'
2016년 시작한 포켓몬 지역 챔피언십에서 첫 한국인 우승자가 탄생했다. 'MeLuCa' 이지석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8일부터 9일(한국 시간 기준)까지 미국 샌디에고에서 포켓몬 북미 지역 챔피언십이 개최됐다. 총 531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총상금 1만1000달러(약 1370만 원)와 함께 월드 챔피언십 진출에 필요한 포인트가 걸렸다.
지역 챔피언십은 북미, 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태평양 5개 대륙에서 개최되는 대회다. 포켓몬 월드컵 격인 '월드 챔피언십(이하 WCS)' 다음가는 중요 대회다. 그런 만큼 세계 각지의 실력자들이 모인 각축장이다.
8월에 개최되는 2023 WCS 마스터 부문 진출에 필요한 최소 챔피언십 포인트는 총 300점이다. 이 선수는 우승으로 상금 3000달러(약 375만 원)와 챔피언십 포인트 200점을 획득했다.
이 선수가 지역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 챔피언십 진출 가능성이 크게 올라간 가운데, 제2의 박세준이 탄생할 수 있을지 국내 포켓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선수들도 이 선수의 우승을 보고 다시 한 번 동기 부여를 얻은 모습이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 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처음 세계대회에서 다른 나라의 플레이어들과 마주쳤을 때 느낀 실력의 격차가 최근 많이 줄어들었다"며 "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된다면 2014년의 박세준 선수 이후 한국 선수들이 넘지 못한 8강의 벽을 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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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MeLuCa 선수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MeLuCa' 이지석입니다. 2015년 세계대회가 끝난 직후 더블배틀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즐기고 있습니다. 주요 이력으로는 '포켓몬 대한민국 대표 선발전 2016' 마스터 부문 우승, '2020 플레이어스 컵 글로벌' 준우승, '2023 샌디에고 지역 챔피언십' 마스터 부문 우승이 있습니다.
Q. 포켓몬스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4년 초반 인터넷에서 배틀 영상을 보고 싱글배틀로 입문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더블배틀은 2015년 세계대회가 끝난 직후 시작했습니다. 2015년 이전까지는 계절별로 열리는 국내 공식 대회인 '코리안리그'가 카드게임 부문만 있었는데, 이 시기에 게임 부문이 신설되어서 공식 대회에 참가할 목적으로 더블배틀에 들어왔습니다.
Q.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삐삐'를 가장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배틀에서의 성능과 별개로 생긴 것만 보고 좋아했습니다. 2020 플레이어스 컵에서 삐삐를 사용해 준우승이라는 높은 성적을 거둔 이후에는 성능적인 면에서도 좋아합니다.
Q. 랭크배틀 시즌1에서 최종 4위를 기록했지만 파티 공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역 챔피언십에서 사용한 파티를 랭크배틀에서 사용했나요?
랭크배틀에서는 '깨어진갑옷' 특성의 '카디나르마'. '구애스카프'를 준 '돌핀맨', 그리고 '바리비 열매'의 '님피아'를 중심으로 한 공격적인 파티를 사용했습니다. 샌디에고에서 사용한 파티는 오픈시트를 상정하고 가능한 한 대응 폭이 넓은 파티를 짜는 것을 목표로 발전시키는 중이었습니다.
한두 가지 중심 전략만 준비하고 쭉 밀어붙이는 편이 유리한 랭크배틀 환경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랭크배틀에서 사용한 파티는 시즌 종료가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에 멈췄습니다. 다만, 랭크배틀에서 마주친 새로운 유형의 전략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샌디에고 파티를 계속 수정했습니다.
Q. 테라스탈이 밸런스적으로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라고 많은 유저들이 비판합니다. 특히 테라스탈 정보 유무가 큰 대회에서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태까지 없던 유형의 기믹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더블배틀에서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파티를 가지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대응 가능합니다. 가령, 기술의 위력을 올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테라스탈을 사용하는 것은 5세대의 주얼, 7세대의 Z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방어적으로 테라스탈을 하는 것은 타입 상성에 맞춘 교체와 비슷해서 상대의 교체 플레이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테라스탈 정보를 공개하고 대전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더 확실히 보이긴 합니다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대전과 비교했을 때 이쪽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문제는 테라스탈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대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자신이 만났던 상대들의 테라스탈 정보를 지인들과 공유하고 정보량에서 이득을 보는 경우입니다. 이는 테라스탈 자체가 아니라 특정 참가자 집단의 문제입니다.
Q. 테라스탈로 인해 고화력/고스핏 어태커와 고내구 포켓몬만 살아남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현재 메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애초에 실전 배틀이 환경 자체가 화력과 내구가 높고 스피드가 빠르지 않다면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테라스탈과는 별개의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어써러셔' 등 지나치게 강한 포켓몬이 있긴하지만 이 역시도 테라스탈이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과거 전략을 구상할 때 기존에는 '우라오스의 인파이트', '토게키스의 다이제트' 등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했다면, 지금은 "대략 이 정도 결정력을 가진 포켓몬의 테라버스트를 버티게끔" 등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조정을 해야 합니다. 약간 머리가 아플 수는 있겠죠.
Q. 스위스에서 연패를 하며 탈락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 했는지 궁금합니다.
스위스 1라운드부터 6라운드까지 전부 2승 0패로 승리하며 컨디션이 최고로 올라온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7, 8라운드에서 상정하지 않은 형태의 어써러셔 주축 파티를 만나 연패하면서 힘들어졌습니다. 대회를 동행했던 지인분이 멘탈 케어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한국에 있는 선수들과 전략 논의를 통해 7, 8라운드 상대를 다시 만날 경우 이길 수 있는 플랜을 마련한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Q. 파티 구축 경위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난 '소드실드'에서 애용한 파티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레이스포스, 블리자포스, 우라오스, 고릴타, 삐삐'를 각각 '타부자고, 드닐레이브, 켄타로스, 마스카나, 파밀리쥐'로 대체했죠. 완성한 초안을 연습을 통해 조정을 거쳤고 최종적으로 파밀리쥐가 빠지고 '콜로솔트'와 '따라큐'가 추가됐습니다.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파티를 짜기 시작할 당시 사람들이 잘 쓰지 않았던 드닐레이브, 켄타로스, 콜로솔트 등의 포켓몬을 시도해보고 그 성능을 깨달은 것, 그리고 소드실드 시절 파티의 중심 전략이었던 프렌드가드 날따름과 랭크업 기술의 조합이 잘 통하지 않자 빠르게 포기하고 새 파티의 강점을 찾아간 것입니다.
Q.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결승전 첫 경기를 이겼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위스 8라운드에서 상대했을 때는 정말 무기력하게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결승은 저에게 리벤지 매치였습니다. 패배 후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1세트를 이기고 나서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 뒤로 수읽기도 과감하게 시도했고 결국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Q.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상대는 누구였나요?
스위스 7라운드 상대인 '에밀로 포브스' 선수입니다. 대전이 끝난 후 계산을 해보니 확률적인 면에서 운이 안 좋았던 것도 있지만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고 해야 할까요. 여러모로 상대 페이스에 말려들어 최선의 플레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라운드가 끝나고 복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반성하고 후회한 기억이 있네요.
Q. 드닐레이브의 물 테라스탈, 콜로솔트의 독 테라스탈 채용이 눈에 띕니다. 일반적인 형태는 아닌데 해당 속성으로 채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둘 다 방어 상성을 우선으로 고려하여 테라스탈 타입을 선택했습니다. 드닐레이브의 경우 어떤 경우에도 강철 타입을 반감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강철과 물 타입 정도가 후보에 올랐죠.
하지만 강철은 '지진'에 일관성을 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물 타입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타부자고에게 강철 테라피스를 다 써버려서 남은 게 없었다는 웃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써보니 물 타입이 더 좋았던 것은 맞습니다.
콜로솔트의 경우 풀과 격투 타입을 반감시키는 타입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마스카나'의 '트릭플라워'와 '저승갓숭'의 '드레인펀치'를 반감하는 것이 중요했죠. 선택지는 비행과 독 타입으로 좁혀졌습니다.
처음에는 비행 타입을 사용했지만 메이저 타입인 전기에 약점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연습 과정에서 콜로솔트가 활약했던 상황을 분석해보니 독 타입이라고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 타입으로 결정했습니다.
Q. 켄타로스에 방진고글을 줬습니다. 버섯포자 등을 대비한 이유로 보입니다. 다양한 도구 중 방진고글을 켄타로스에게 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샌디에고 대회처럼 오픈시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에서는 '뽀록나'가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북미 플레이어들이 뽀록나, '오롱털' 등 내구가 높은 포켓몬을 중심으로 사이클을 펼치는 것을 선호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뽀록나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고 싶었습니다.
뽀록나 자체는 다대 일 구도를 만들면 쉽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뽀록나보단 파트너를 빨리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죠. 파트너로 많이 사용하는 포켓몬은 '삼삼드래', '라우드본', 불꽃 테라스탈 '저승갓숭' 등이 있습니다.
해당 포켓몬 모두 켄타로스에게 약점을 찔립니다. 하여 이들에게 강한 타점을 보유한 켄타로스에게 분노가루 내성을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버섯포자 상대로 교체로 들어올 수 있는 포켓몬의 숫자가 1마리 늘어난 것도 좋았습니다.
Q. 마지막 결승전 3경기는 생각보다 쉽게 승부가 갈렸습니다. 미러 대면에서 상대 타부자고는 잡고, 이지석 선수의 타부자고는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떤 생각으로 플레이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유가 뭐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의 타부자고에게 '탁쳐서 떨구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 타부자고를 상대 마스카나의 탁쳐서떨구기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것과 같았고, 이를 버티기 위해서 강철 테라스탈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제 마스카나를 잃으면 상대가 테라스탈을 이미 소모했어도 어써러셔를 막을 방법이 없어지므로 꽤 도박성이 짙은 수였는데 통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명랑' 성격의 마스카나의 공격은 타부자고가 어느 정도 확률로 견디니까 그와 같은 플레이를 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저는 '고집' 성격의 마스카나를 사용해서 상대 계산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Q. 목표는 역시 월드 챔피언십일 것으로 보입니다. 각오 한마디 부탁합니다.
처음 세계대회에서 다른 나라의 플레이어들과 마주쳤을 때 느낀 실력의 격차가 최근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저 또한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 여러모로 적기라고 여깁니다. 올해 세계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면 마스터 부문에서는 2014년의 박세준 선수 이후 한국 선수들이 넘지 못한 8강의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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