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외환 출신 하나은행장의 숙제
외환 출신 이승열 행장…화학적 통합 완성할까
길을 걷다가 은행 간판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갑니다. 최근 몇년새 가장 주목해서 보는 은행의 간판은 하나은행 간판입니다. 사실 하나은행 간판은 두가지거든요.
어떤 지점은 '하나은행'이라는 간판이 달려있지만 어떤 지점은 'KEB하나은행'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요. 오늘은 이처럼 하나은행의 간판이 지점에 따라 다른 이유와 여기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을 품다
시간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하나금융지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 합니다.
이후 기존에 자회사로 둔 하나은행과 구 외환은행을 합병하면서 사명을 'KEB하나은행'으로 변경했습니다. 외환은행의 영문명인 KEB(Korea Exchange Bank)과 기존 하나은행의 사명을 병기한 셈입니다.
KEB라는 약어를 활용한 데에는 외환은행의 위상, 외환은행 출신 직원들의 자부심 등을 지켜주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외환은행 직원들 역시 이를 원했고요.
외환은행은 영업 당시 국내의 외환거래 대부분을 책임질 정도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은행이었습니다. 해외 네트워크 역시 국내 최대 수준이었으니 글로벌 사업에 공을 들이는 하나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외환은행'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경쟁력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을 겁니다.
외환은행 출신 직원들의 사기진작 측면도 있었습니다.
외환은행은 소위 '엘리트 집단'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뱅커'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높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외환은행 출신에 대한 평판은 유독 높았습니다. 외환은행 업무 특성상 인재들을 고르고 골라 뽑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임금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나은행에 흡수되기 이전 외환은행 임직원의 평균 급여는 800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하나은행 임직원 평균 급여는 7300만원으로 10% 이상 높았던 셈입니다.
이런 외환은행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되는 데에는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관련기사 : 국감 쟁점된 론스타…책임소재 놓고 여야 공방
게다가 사실상 다른 은행 밑으로 흡수합병됐으니 '엘리트'로 칭송받던 외환은행 출신 직원들의 사기 역시 많이 꺾였을 겁니다.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품으면서 'KEB'를 남겨뒀던 이유로 꼽힙니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2020년 해가 바뀌자 마자 대담한 결정을 내립니다. 'KEB하나은행'의 사명을 'KEB'를 뺀 '하나은행'으로 바꾸겠다고 정한 겁니다. ▷관련기사 : '아듀! 외환은행'…53년만에 지워진 이름
하나금융지주가 내건 명분은 두가지였습니다. 다른 시중은행과 발음상 혼동되는 부분이 있고(KB국민은행을 의미합니다) 고객들 대부분 역시 '하나은행'으로 통칭해 사용한다는 겁니다.
또 하나금융지주 계열사 중 유일하게 브랜드명이 통일되지 않아 사명을 일원화해 직원들의 소속감을 고취시키겠다는 목적도 깔려있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KEB의 흔적
하나금융지주가 KEB를 하나은행의 사명에서 뺀지 2년이 되갑니다만 아직도 거리를 거닐다보면 'KEB하나은행'을 단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은행은 간판을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두가지 간판이 공존하는 상황입니다.
실제 하나금융지주가 은행의 명칭을 '하나은행'으로 줄이겠다고 밝히자 내부적 반발도 있었습니다.
애초 두 은행이 합병 당시 하나금융지주, 구 외환은행, 구 하나은행 노사는 상호명에 '외환' 또는 'KEB'를 넣기로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겼다는 겁니다. 하나은행 노조도 아직 '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화학적 통합 나선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하나금융지주를 이끄는 함영주 회장 입장에서는 이른바 '화학적 통합'을 마무리하고 싶을 겁니다. 2015년 구 하나은행과 구 외환은행을 통합하면서 KEB하나은행을 출범시킨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함영주 현 회장에게 초대 통합은행장의 자리를 맡겼습니다.
당시 함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여럿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은행간의 화학적 통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주요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핵심 M&A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외환위기로 많은 은행들이 구조조정 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 이른바 '계파갈등' 입니다. 출신 은행에 따라 하나의 회사에서 묘한 경쟁구도가 형성됐고 일부 '계파갈등'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 [인사이드 스토리]한국 금융 M&A
따라서 구 하나은행과 구 외환은행의 통합 이후 이같은 계파갈등이 뿌리도 내리지 못하게 해야하는 화학적 통합이 중요한 과제였던 셈입니다.
2015년 당시 함 회장이 행장으로 취임하면서 "저는 피합병은행인 서울은행 출신"이라며 "과거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통합은행장으로서 화학적통합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한 점이 이를 뒷받침 합니다.
함 회장은 2019년까지 KEB하나은행을 이끌다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거쳐 지난해부터는 하나금융지주를 이끌고 있습니다.
함 회장부터 지성규 전 행장, 박성호 전 행장 역시 구 외환은행과 구 하나은행의 화학적 통합을 위해 무던히 애를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IT 등 전산, 교차발령 등 인적교류, 노조 통합, 두 은행간 달랐던 급여·인사·복지·직급 등의 통합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화학적 통합을 시작했고 이제는 하나금융지주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함 회장 입장에서는 '마무리'를 하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환 출신 이승열 행장의 과제
하나금융지주는 박성호 전 행장을 지주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차기 하나은행장으로 이승열 전 하나생명보험 사장을 낙점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무엇보다 관심있게 봤던 이승열 행장의 이력은 그가 '외환은행' 출신이라는 겁니다. 피합병은행(서울은행) 출신으로 행장자리에 올랐던 함 회장이 그와 같이 피합병은행(외환은행)출신 인사를 행장으로 앉히면서 화학적 통합의 마무리를 해달라고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승열 행장에게 외환은행 출신 후배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은행 출신 후배들도 품어 진정한 '화학적 통합'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과제가 놓여진 셈입니다.
하나은행의 간판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대표적일 수 있습니다. 이승열 행장이 화학적 통합을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죠.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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