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도 법인 설립 가능 싱가포르, K스타트업 정착 도움”
19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약 40여년이 지난 지금, 네 마리 용의 성적표는 뚜렷하게 갈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만은 2000년대 이후 성장 둔화를 겪으며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지난 몇년간 정치적 불안정을 경험한 홍콩은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금융·산업 허브로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작은 국토에 자원도 부족한 싱가포르가 꾸준히 발전하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에도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코노미조선이 그 비결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12월 1일 전 세계 금융기관이 한데 모여 있는 싱가포르 중심업무지구(CBD)에 있는 21 콜리어 키(Collyer Quay) 빌딩 안에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이 저마다 업무에 골몰해 있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성, 자기네들끼리 한창 토론을 하고 있는 히잡 쓴 여인들까지 국적도, 인종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공유 오피스 공간인 위워크(WeWork)가 입점한 이곳은 싱가포르에 진출한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일터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KB금융그룹(이하 KB) 역시 2022년 9월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이곳 3층에 글로벌 핀테크 랩(Lab)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 중 싱가포르에 핀테크 관련 사무실을 개설한 것은 KB가 처음이다. 차지영 KB 글로벌 핀테크 랩 팀장은 “싱가포르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면서 “유망한 국내 스타트업들이 싱가포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핀테크 랩이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해외 진출, 특히 동남아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국내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현지 정착과 지원을 도와주는 일이다. 둘째, 이 부분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싱가포르 현지의 스타트업을 발굴해 한국이나 KB의 전체 글로벌 네트워크에 연계해 주는 것이 중장기 목표다. 셋째, 투자 연계다. 글로벌 핀테크 랩이 벤처캐피털(VC)이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역할을 하진 않지만, 우리 계열사에 KB증권이라든지 스타트업 투자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곳이 있으니 좋은 업체가 있거나 좋은 펀드에 우리가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투자를 연계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KB가 싱가포르에 핀테크 랩을 개소한 이유는.
”싱가포르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가 벤처 투자가 엄청나게 활성화돼 있고, 정부와 금융 당국도 관련 사업에 대단히 우호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점이었다. 스타트업이 사업하기 가장 쉬운 나라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싱가포르일 것이다. 빠르면 법인 설립이 이틀 안에 가능하고, 최저 자본금이 1싱가포르달러(약 900원)면 된다. 또한 법인 설립을 도와주는 에이전시 등도 많은데다 사업상 제약도 별로 없는 편이다.”
핀테크 랩을 개소하면서 이미 국내 네 개 스타트업을 ‘KB 스타터스 싱가포르’로 선정했다. 이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우선 네 곳 중 세 곳이 지금 같은 건물에서 위워크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임차료를 지원하고 있다. 조금 전에 싱가포르에선 법인 설립이 비교적 간단하다고 했지만, 아무런 노하우나 정보가 없으면 시작하기 막막할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해 주기 위해 법률·회계·세무 등 다방면에 걸쳐 싱가포르 현지 전문가들과 네트워킹을 맺어 이들을 연계해 주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싱가포르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 정도로 스타트업 관련 행사나 데모데이가 열리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잘 이용해서 향후 이곳에서 법인을 세운 국내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필요로 할 때 연결·지원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엔 홍콩에서 철수해서 싱가포르로 옮긴 글로벌 기업들도 많다고 하는데.
”연수 기간까지 합치면 2015년부터 약 7년간 홍콩에서 생활했는데, 우산 혁명과 코로나19 이후 생활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체감한다. 거리에서 외국인 보기가 힘들어졌고, 홍콩 사람의 경우 홍콩에서 엑시트(exit)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같다. 홍콩이 다소 활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낀 반면, 그와 대조적으로 싱가포르는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도 이곳으로 많이 이전하고 있어 개인적인 견해지만 당분간은 이런 추세가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plus point
Interview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 실패, 법인세 인상·금융기관 분산 탓”
이주형 기자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동북아 금융 허브’ 프로젝트는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이후 정부에서도 법인세 인상, 금융 공기업 지방 이전 등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금융 경쟁력이 후퇴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12월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 전략은 ‘해외 주요 글로벌 금융 기업의 유치’가 골자였다. 구체적으로 2007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주요 거점 유치, 2020년까지 대형 상업은행·투자은행 지역본부 유치 등의 목표가 수립됐지만 지난 20년간 유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되레 2017년 미국 골드만삭스, 2018년 스위스 UBS, 2019년 호주 매쿼리 등이 우리나라를 떠났다. 2021년에는 미국 시티은행이 국내 소비자 금융 사업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모든 정권에서 국가 균형 발전을 명목으로 증권거래소나 예탁원, 캠코 등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면서 경쟁력이 추락하는 계기가 됐다”며 “부산 외에도 국민연금은 전주로, 사학연금은 나주로 이전하면서 주요 기관이 분산된 상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를 “표심만 생각한 정책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우리나라 순위는 2015년 6위에서 2016년 14위, 2017년 27위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22년 9월 기준으로 11위까지 회복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 등으로 또다시 경쟁력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서울에 기업 본사의 90%가 몰려 있다”며 “싱가포르와 뉴욕처럼 한 도시에 금융기관이 모여 있어야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높은 법인세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세금 감면이 필수라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 때 법인세가 22%에서 25%로 올랐는데, 이는 ‘거꾸로 정책’이었다”라며 “금융 관련 세금이 없고 법인세가 17%로 낮은 싱가포르처럼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Part 1. 탈중국 돈·인재 몰리는 싱가포르
①아시아 허브로 급부상 중인 싱가포르
②[Infographic] 싱가포르 경제 생태계
Part 2. 싱가포르가 글로벌 기업 러브콜 받는 이유
③[Interview]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부청장 탄콩휘
④[Interview] 이영상 이김컨설팅 대표
⑤[Interview] 이탁근 해시드 이머전트 대표
⑥[Interview] 차지영 KB 글로벌 핀테크 랩 팀장
⑦[Interview] 장상해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장
Part 3.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
⑧ [Interview] 최인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대양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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