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규제도 못 살린 시장, 스타벅스가 살렸다

김은영 기자 2023. 1.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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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기자

성수동, 을지로 등으로 쏠렸던 골목상권에 대한 관심이 재래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경동시장의 스타벅스, 광장시장의 카페 어니언, 신당중앙시장의 포25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최근 젊은이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핫플레이스(명소)로 소셜미디어(SNS)를 도배하고 있다.

시장이 젊은이들을 이끈 이유는 힙해(멋져)서다. 손가락 장보기가 익숙한 이들에게 시장은 그저 낡고 불편한 곳이었으나, 현대적인 콘텐츠와 만나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가치를 만든 이는 바로 시장 상인과 젊은 창업자들이다. 경동시장의 경우 시장 운영사인 케이디마켓이 스타벅스코리아 측에 3년간 요청한 끝에 1960년에 지은 폐극장을 개조해 스타벅스로 새단장했다.

해당 매장은 스타벅스가 지역 사회와 이익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스토어로, 판매되는 제품당 300원씩을 적립해 기부한다. 개점 이후 보름간 누적 방문자 수가 2만 명을 넘어섰고, 같은 기간 경동시장 내에 자리한 청년몰 식당 매출도 2배가량 늘었다. 몰려드는 고객에 스타벅스 측은 18일부터 운영시간을 2시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광장시장 카페 어니언은 어떤가. 60년 된 금은방을 개조해 만든 이 집은 명물인 페스추리 피자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종이상자를 찢어 만든 메뉴판과 박스테이프를 칭칭 감은 플라스틱 의자, 비닐 커튼으로 간신히 바람을 막은 공간은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이를 문제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신당중앙시장에 자리를 잡은 베트남 쌀국숫집 포25도 빼놓을 수 없다. 경리단길을 띄운 장진우 셰프가 만든 이 쌀국수 집은 ‘베트남보다 더 베트남 같은’ 맛과 멋으로 젊은이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물론 카페 몇 개가 생겼다고 갑자기 시장이 부흥할 리는 없다. 시장 안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이 인근 과일가게와 약재상에서 장을 볼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장과는 상관없던 20~30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시장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다른 곳엔 없는 ‘시장통 콘텐츠’가 있다.

젊은이들에게 전통시장은 장터가 아니라 놀이공간이다. 그래서 스타벅스 매장이 9개나 있는 광화문을 두고 경동시장까지 간다.

시장의 불편함마저 문화로 승화했다. 한 방문객은 경동시장 스타벅스를 찾아가는 여정을 “해리 포터가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역에 위치한 9와 3/4 승강장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새롭고 재밌었다는 의미다.

‘전통시장은 대기업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오랜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의 주말 영업을 한 달에 두 번 중단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 규제는 10년 넘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전통시장은 1401개로, 2018년보다 40개가 줄었다. 같은 기간 시장 내 점포 수도 24만2440개에서 24만623개로 감소했다. 이에 대구 등 일부 지자체는 한 달에 두 번 휴점하는 기존 유통법을 손보는 모양새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공급자의 시각에서 짜여 성과가 미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을 동시대적인 공간으로 바꾸려는 노력 없이, 시장을 망친 적을 만들어 책임을 지우는 식으로 시장과 대형마트 모두를 옭아맸다.

이는 시장도 상인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화제가 된 시장의 명소 모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경동시장의 경우 대기업인 스타벅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온라인 시대, 오프라인 상권의 역할은 비단 재화를 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래시장 역시 독자적인 콘텐츠가 가치를 만든다. 필요하다면 대기업을 끌여들어서라도 말이다. 이분법적 시각을 거두고 시장을 바라보는 각도기부터 다시 세워야 할 때다.

[김은영 생활경제부 채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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