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절대 빈곤층도 가족 있다고 의료급여 못받는 일 줄어들까

서한기 2023. 1.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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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차 기초생활보장계획 수립 때 부양의무자 기준 존폐 관심
완전 폐지보다 단계적 기준 완화 전망…의료급여 재정 큰 부담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촉구'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과 420공투단 등 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2022.4.7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극빈층인 A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국가로부터 생계비(생계급여)와 주거비(주거급여)를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의료비(의료급여)는 받지 못하고 있다.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가족이 있어서다. 의료비는 다른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와는 달리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받는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재산이나 소득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기준에 부합해도 가족이 살아 있고 일정한 소득과 재산이 있다면, 급여를 받을 수 없게 한 장치다. 국가보다 가족이 먼저 부양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지만, 복지 사각지대를 낳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국가가 생활이 어려운 빈곤층에 현금이나 현물 형태로 지원을 해서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사회보장 장치이다.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사회경제적 환란의 와중에 빈곤 문제에 대처하고자 1999년 9월 7일 제정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근거해 2000년 시행됐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한다는데…단계적 폐지 유력

정부는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손질하기로 했는데, A씨의 사례처럼 절대 빈곤층이 자녀 등 부양책임을 짊어진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줄어들지 관심이 쏠린다.

1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적용될 '제3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을 올해 수립할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구체적 시행방안을 마련하고자 연구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기고 이를 바탕으로 공청회를 열어 각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포함해 여론을 수렴, 종합계획을 마련한 뒤 오는 8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어 심의, 의결해 확정할 계획이다.

현재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의 존폐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정부는 한꺼번에 없애기보다는 단계적으로 기준을 완화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백진주 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장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기는 여건이 무르익지 않아 당장은 어렵고, 의료적 필요도와 효율적 재정지출 등을 고려해서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 기준을 조정해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국민 맞춤형 기초보장 강화' 일환으로 올해부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선정할 때 활용되는 재산 기준을 완화해 수급자 진입 문턱을 낮췄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각종 급여, 즉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 수급자를 선정할 때는 빈곤층 본인과 부양의무자의 소득(소득평가액)과 재산(재산의 소득환산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 중에서 재산의 소득환산액은 재산총액에서 부채와 함께 기본적 생활과 주거환경 유지에 필요한 금액, 즉 '기본재산공제액'을 제외하고 계산하는데, 복지부는 이런 기본재산공제액의 한도를 지역별로 2천900만~6천900만원에서 5천300만~9천9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지역 구분도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 등 3개 그룹에서 올해부터 서울·경기·광역-세종-창원·그 외 지역 등 4개 그룹으로 바꿨다.

이번 조치로 정부는 1만3천여 가구가 의료급여 대상에 추가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양의무자 기준 의료급여에만 존속…재정 부담 때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간 여러 차례 개정됐다.

특히 2014년 12월에는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하면서 기준 중위소득을 도입해 수급자의 소득수준이 일정 수준 향상됐더라도 모든 급여에서 탈락하는 게 아니라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이면 생계급여는 받지 못해도 의료·주거·교육 급여 중 일부는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기준 중위소득 대비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7%, 교육급여는 50% 이하 가구에 지급한다. 급여별로 비율에 차등을 둔 것이다.

기준 중위소득은 국민 가구소득의 중간값으로, 국내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해 12개 부처 76개 복지 사업의 수급자 선정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양의무자 범위도 '직계혈족과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 혈족'에서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좁혔다. 여기서 사망한 1촌 직계혈족의 배우자는 제외된다. 예를 들어 아들·딸이 사망하면 며느리·사위는 부양의무자에서 빠진다.

나아가 가족에 대한 부양 의식이 약해지는 시대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빈곤 사각지대를 만드는 주요 걸림돌로 지목되며 폐지 여론이 높아지자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 내지 폐지했다.

현재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 기초생활보장 주요 급여 중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 있는 급여는 의료급여가 유일하다.

교육급여는 2015년 7월에, 주거급여는 2018년 10월에 각각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앴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도 2017년 11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조금씩 낮춰 수급자나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 장애인 또는 노인이 있거나 한부모 가구인 경우 등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했다.

2021년 10월에는 근로 능력이 없는 등 생계 활동이 어려운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전인 1961년 생활보호법이 제정될 때부터 수급자 선정 기준으로 이용됐던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60년 만에 없앤 것이다.

또 2022년 1월부터는 부양의무자 가구에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있을 때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그렇지만 아직 의료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남아 있다.

소득·재산 등이 의료급여 선정기준인 기준 중위소득의 40% 이하에 불과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50만∼60만 명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의료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데 주저하는 것은 재정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2021년 기초생활보장 관련 예산(약 13조2천334억원) 중에서 무려 9조5천억원 가량이 저소득층 등에게 지급한 의료급여 비용으로 쓰였다. 2021년 기준 의료급여 수급자는 151만6천여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이 전체의 39%, 급여비의 51% 차지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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