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도시를 만든 시민정신, 장대한 그림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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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으로 꼽히니, 그것의 총체적인 상을 포착하려는 시도 역시 없었을 리 없다.
중세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인 카이펑을 담은 '청명상하도'(장택단)는 세계 최초의 도시그림이라 할 만한데, 이 그림에선 병영처럼 구획되고 각각의 구역이 고립된 이전 도시(예컨대 창안)들과 달리 상업의 발달로 기존의 규제와 방벽들이 허물어지고 사회적 다양성이 폭발하기 시작한 카이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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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15곳 도시를 담은 그림들
카이펑·시에나부터 한양·뉴욕까지
그 도시만이 가진 유전자는 무엇이었나
도시의 만화경
도시그림, 현실과 동경을 넘나들다
손세관 지음 l 집 l 3만2000원
도시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으로 꼽히니, 그것의 총체적인 상을 포착하려는 시도 역시 없었을 리 없다. 장대한 도시의 전체 모습을 한 장의 그림 속에 펼쳐내려는 시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도시의 만화경>은 도시와 주거문화를 연구해온 건축학자 손세관(중앙대 명예교수)이 열다섯 장의 ‘도시그림’을 소재로 삼아 역사 속 열다섯 곳 도시를 만화경처럼 펼쳐낸 책이다. 서로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역사 속 도시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도시문화를 꽃피웠는지, 또 우리가 주목할 것들은 무엇인지 등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한다. 지은이가 안내하는 여정은 14세기 시에나에서 출발해 12세기 카이펑,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16세기 베네치아, 17세기 암스테르담, 청대의 쑤저우, 사파비 왕조의 이스파한, 18세기 파리와 로마, 19세기 런던과 빈, 다시 청대의 베이징, 에도 시대의 교토, 19세기 말 서울을 거쳐 20세기 뉴욕에 이른다.
도시를 홍보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에 도시그림들은 그 도시가 가장 흥했을 때 그려졌다. 중세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인 카이펑을 담은 ‘청명상하도’(장택단)는 세계 최초의 도시그림이라 할 만한데, 이 그림에선 병영처럼 구획되고 각각의 구역이 고립된 이전 도시(예컨대 창안)들과 달리 상업의 발달로 기존의 규제와 방벽들이 허물어지고 사회적 다양성이 폭발하기 시작한 카이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엔 ‘뜻’이 무엇보다 앞섰다. 일부 과장과 왜곡이 있더라도, 자기 도시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이상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를 담은 ‘사슬지도’(프란체스코 로셀리)는 도시의 윤곽을 ‘만돌라’(타원형의 후광) 형태로 만들려 했고, 베네치아를 담은 ‘베네치아 조망 그림’(야코프 데바르바리)은 도시를 상징하는 돌고래의 윤곽을 따랐다.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이슬람 도시에 대한 해설이 흥미롭다. ‘이스파한 전경’(얀 얀소니우스)에서 볼 수 있는 사파비 왕조의 수도 이스파한은 특별한 중심도 지역을 나누는 경계도 없는 ‘미궁도시’다. 혈족 중심의 공동체와 여성을 격리하는 율법, 가족의 단란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에 따라 휘어지거나 꺾이는 길, 큰 길에 면하지 않는 주택 입구, 중정을 중심에 두는 건축 등이 정착한 결과다. 더 재밌는 건, 해상 무역의 발달로 동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네치아 역시 다핵적인 구조를 띠었고 동양문화권에 주로 나타나는 중정 건축도 두드러졌다는 사실. 넉넉지 않은 땅에 되도록 많은 주택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때문에 베네치아의 중정은 여러 세대가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집을 효율적으로 공유하려는 노력 가운데 형성됐다고 한다.
이밖에 지은이는 피렌체의 귀족 저택 팔라초로부터 수평·수직 등 건축물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시건축의 전통을 찾아내거나, 칼뱅주의의 영향으로 허세나 낭비 없이 대규모로 서민주택을 지었던 암스테르담에선 ‘가족만을 위한 집’이라는 근대적 도시주택의 시작을 찾아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그 도시만이 가진 유전자가 있어야 그것을 사랑하고 지켜내기 위해 절제하고 노력하는 공동체 정신, 곧 ‘시민정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열다섯 장의 도시그림들은 이 같은 시민정신과 도시문화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증언하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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