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100배, 1000배 보복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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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며 "도발에 대한 자위권 행사는 확고하게 해야 한다. 몇배, 몇십배 수준으로 대응해야 효과적인 자위권 행사가 된다"고 말했다.
'100배, 1000배 보복'은 국제법과 군의 자위권 행사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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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떨어지는 호전적 북한 말투 따라하나
자위권 행사 유엔사 교전규칙에도 안 맞아
윤 대통령, 북핵·미사일 대응 논리 갖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며 “도발에 대한 자위권 행사는 확고하게 해야 한다. 몇배, 몇십배 수준으로 대응해야 효과적인 자위권 행사가 된다”고 말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군 통수권자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속 시원하고 화끈하다’는 반응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섣부르고 위험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100배 1000배 보복’은 외교안보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언어로 부적절하다. ‘100배, 1000배 보복’은 그동안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겨냥해 사용해온 거칠고 호전적인 언사다. ‘글로벌 중추국가’가 국정목표인 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언급하기엔 품격이 떨어지는 말이다. 일선에서 직접 전투를 수행할 ‘창끝부대’ 지휘관인 대대장·중대장이 장병들에게 “북한이 도발하면 100배 1000배 응징하라”고 정신교육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일선 지휘관의 강조화법일 뿐이다.
‘100배, 1000배 보복’은 국제법과 군의 자위권 행사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군의 자위권 행사는 국제연합(UN) 헌장, 유엔사령부(유엔사) 정전 교전규칙 등에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국제법이 용인하는 자위권 행사의 요건은 임박성(적의 공격이 임박)과 필요성(무력 사용이 유일한 대책), 비례성이다. 특히 비례성은 무력행사가 과도해서는 안 되고 위협 요인의 제거 목적에 국한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일선부대에선 어려운 비례성의 개념을 ‘동종 동량 대응’으로 쉽게 교육했다. 북한이 총탄 1발을 쏘면 총탄 1발, 대포 1발에는 대포 1발로 대응한다는 식이다.
유엔사 교전규칙은 국제법의 자위권 행사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군 당국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근거해 각종 작전예규와 지침 등을 운용한다. 군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 이후 ‘북한의 도발을 충분히 응징한다’는 취지로 자위권 행사 때 ‘충분성 원칙’을 추가했다. 군 당국은 이를 일선부대 대상으로 교육할 때 ‘북한한테 공격받으면 3배로 반격하라’고 설명한다. 남북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 정전협정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유엔사도 3배 대응은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지시대로 100배, 1000배로 때리면,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문제삼을 가능성이 크다. 선례가 있다. 2020년 5월3일 비무장지대 북한군 감시초소(GP)에서 한국 감시초소를 향해 총탄 4발이 발사됐고, 한국군은 기관총탄 30발을 대응사격했다. 유엔사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남북이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유엔사는 북한 총격 4발에 30발로 맞선 한국군의 사격이 교전 규칙상 ‘비례성 원칙'을 어겨 과잉대응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8배 대응’도 문제삼는 유엔사가 ‘100배 1000배 보복’을 정당한 자위권 행사로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설명하면서 “분쟁은 국제 규범과 규칙을 기반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00배 1000배 보복’ 같은 거친 말이 아니라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대응이 되도록 말과 논리를 다듬어야 할 때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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