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이 열망했던 몽상(夢想)의 섬, 삼봉도 [책&생각]

한겨레 2023. 1.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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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년(성종 1) 12월11일 성종은 영안도관찰사 이계손(李繼孫)에게 삼봉도(三峯島)를 찾아가 '세금을 피하고 나라를 배반한 자'(逃賦背國)들을 잡아올 것을 명한다.

분명한 것은 이 시기 삼봉도가 '세금과 국가'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해방공간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의 민중들은 18세기에도 여전히 삼봉도를 국가권력의 억압과 수탈이 존재하지 않는 해방공간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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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고금유사]강명관의 고금유사
성종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어진.

1470년(성종 1) 12월11일 성종은 영안도관찰사 이계손(李繼孫)에게 삼봉도(三峯島)를 찾아가 ‘세금을 피하고 나라를 배반한 자’(逃賦背國)들을 잡아올 것을 명한다. 삼봉도는 회령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7일을 가면 도착하는 섬이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몰랐다. 모든 것은 풍문일 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 시기 삼봉도가 ‘세금과 국가’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해방공간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성종이 삼봉도를 찾는 이유는 명료했다. 땅을 넓히고 백성의 수를 늘리는 것이 왕정이 먼저 해야 할 바(廣土衆民, 王政之所先也)라는 것이었다. 이 말의 이면에 수탈할 토지와 인구를 더 확보하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성종은 박원종(朴元宗)을 경차관(敬差官)으로 임명해 삼봉도를 찾으러 보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1472년부터 1476년까지 3차례 배를 띄웠다. 1476년 10월22일 삼봉도 근처에 도착해 약 30여 명의 주민을 찾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하지만 섬에 상륙한 것도,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것도 아니었다. 삼봉도는 다시 동해 바다의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 300~400명의 군사를 1478년 초에 파견하기로 결정했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존재 유무도 불분명한 삼봉도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고 반발하는 신하가 있었던 것이다. 성종은 반발하는 자들을 눌렀다. 백성들이 달아나 섬으로 들어가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있으므로, 강제로 데리고 오지 않으면 스스로 돌아올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국가를 이탈하고자 하는 백성들의 의지가 국가 밖에서 독립된 삶의 공간을 만들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성종은 군사 파견을 기정사실화하고 계획을 밀고 나갔지만, 풍랑으로 인해 중지되고 만다.

삼봉도가 다시 문제가 된 것은 18세기 초반 영조 대에 와서다. 1728년 무신란(戊申亂)과 관계된 인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삼봉도가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사건 관련자를 심문했던 기록에 의하면, 삼봉도는 ‘민중이 열망하는 고통과 억압이 없는 이상향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조선의 민중들은 18세기에도 여전히 삼봉도를 국가권력의 억압과 수탈이 존재하지 않는 해방공간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삼봉도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정석종 선생은 삼봉도를 오늘날 일본의 북해도로 추정했지만, 그것은 어디나 추정일 뿐이다. 삼봉도는 국가권력,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족체제의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상상력의 소산물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삼봉도는 해랑도(海浪島)로 이름을 바꾸어 역사 기록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곳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국가와 세금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또 수적(水賊)의 형태로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어떤 섬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인가. 자본과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어떤 부도덕한 짓과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는, 나만의 섬을 꿈꾸는가? 아니면 동전 하나, 권력 한 점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갑남을녀의 삼봉도와 해랑도를 꿈꾸는가. 물론 둘 다 헛되겠지만, 나라면 후자를 몽상하겠다. 무려 새해가 아닌가.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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