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눈으로 볼 수 없는 건 눈을 감아야 보인다”

임인택 2023. 1.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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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62) 평론가가 10년 만에 네번째 평론집을 냈다.

제목 <우정의 정원> 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만든 '정원 공동체'에서 변주된 말로 땀과 음식, 지식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케포이필리아를 이른다.

케포이필리아에서 응당 함께 마시는 공기가 서영채 말로 '우정'이고, 에피쿠로스 눈에는 '지구적 인간애'(필란트로피아·박애)다.

타인의 텍스트와 타인이란 독자를 두고 그 진정성과 이 진정성이 만나길 바라는, 서영채식 도청이요 서영채식 정원의 공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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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정원
서영채 지음 l 문학동네 l 2만5000원

서영채(62) 평론가가 10년 만에 네번째 평론집을 냈다. 제목 <우정의 정원>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만든 ‘정원 공동체’에서 변주된 말로 땀과 음식, 지식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케포이필리아를 이른다. 케포이필리아에서 응당 함께 마시는 공기가 서영채 말로 ‘우정’이고, 에피쿠로스 눈에는 ‘지구적 인간애’(필란트로피아·박애)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유물론자의 공간”이 바로 우정의 정원인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흡입되는 ‘문학장’의 공기가 그러하다.

어서 한 챕터 한 모금의 공기부터 들이켜보자. 생뚱맞지만 넷플릭스 드라마를 시청하게 됐다는 그의 고백부터. 교수이자 한국 중장년 남성으로 잘 보지 않던 드라마에 처음 매료된 작품이 <나의 아저씨>(2018)다. (동료가 평론가의 평을 요청하기에 보게 됐으나, 이제 그는 케이(K)-드라마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자락에 깐 채 “기대하고 누리고 음미”한다.) 드라마의 극적 장치였던 ‘도청’은 진정성의 극과 극을 연결짓는다. 나아가 서정시를 읽는 양식에 “독백과 도청의 형식”이 있다는 그의 견해는 감성적 수사로 더 논리적이 된다. “혼자 중얼거리는 시인, 그것을 우연히 듣게 된 독자라는 틀”. 시의 턱이 낮아지고, 드라마의 격이 높아지는 순간이랄까.

서영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2017년 12월 <한겨레>와 인터뷰하던 때.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아무렴 그는 문학에 기운 문학사가다. 드라마가 경연하던 아테네의 극장을 소환하고, 성공 공식에 갇혀 쇠락하게 되는 드라마의 한계(서사적 경로 의존성)와 그 한계를 깨려는 데 소명을 두는 문학을 또 대비시키어 마침내 고전을 들춘다. 이는 지혜, 지식, 진실, 진리의 담지자를 넘어, 문학의 근원적 효용과 은짬을 물어왔고 더 물을 수밖에 없는 여정에 30년째 현역으로 서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고전이 전해오는 공기는 고독 내지 죽음의 시선이란 게 평자의 생각이다. 본질도, 효용성도 여기서 비롯한다. 고독, 침묵의 극단까지 가본 이들의 작품이 역사적으로 추려져 밀도 있게 전해내는 그 죽음이 삶의 복판에서 감각될 때 지금 존재의 상태가 현현해진다는 것. 무엇보다 “죽음의 세계에는 시제가 없”기에, 고독과 죽음은 과거의 발견이거니와 미래의 ‘흔적’이다. 이를 소설로 입증한 게 가령 최근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겠다.

서영채는 자신의 비평적 태세로 비판보다 이해와 옹호를 앞세운다. 작품의 흠집을 “메워가며 읽”고, “그 흠집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성찰을 준칙 삼았단 얘기로, 비평의 텍스트가 곧 작가, 독자, 평자의 “성장소설”(양순모 평론가)을 짓는 셈이다. 타인의 텍스트와 타인이란 독자를 두고 그 진정성과 이 진정성이 만나길 바라는, 서영채식 도청이요 서영채식 정원의 공기라 하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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