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목이 쉬도록 그리운 이름 ‘진이정’ 다시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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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정.
진이정의 친구였던 유하 시인은 시인의 말을 대신한 글에서 "그의 시가 긴 세월 언어의 산화를 견디며 더욱 새로워져 있다는 것에 놀란다"며 "외로웠지만, 그만의 방외 언어를 끝까지 고수했기에 비로소 낡지 않는 새로움을, 새로움의 시적 영토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시 '엘 살롱 드 멕시코'에서는 "라디오의 선율을 따라 유년의 기지촌, 그 철조망을 넘는다/그리운 캠프 페이지, 이태원처럼 보광동처럼 후암동처럼 그리운 그리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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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30주기 유고시집 복간
초판 중고가 10만원 넘기도
동인, 시·산문 모아 발간 계획
진이정.
그 이름을 부를 때가 됐다. 묻혀있던 단 한 권의 시집이 다시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절판된 그의 유고시집은 중고 가격으로 10만원이 넘어 독자로부터 충분히 읽히지 못했다.
시인의 작고 30주기를 맞아 유고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가 최근 문학동네에서 복간됐다. 반가운 일이다. 40편의 시는 ‘헤비메탈 같은 비’를 뿌린다. 번뇌로 가득 찬 현실 어디쯤에서 돌아갈 길을 찾는다. 종말을 사랑했던 그는 그리워하며 울먹이고 욕망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목이 쉬도록 시를 썼다.
시집 초반부에는 죽음을 암시하는 시가, 마지막엔 탄생에 관한 시가 역순으로 실려있다. 산문 형식으로 나열된 시에는 온갖 신을 언급하는 굿판의 소리가 들린다. 불교적 세계관이 들어가 있지만 사바세계의 혼돈이 존재한다. ‘시인을 위한 윤회 강좌’에서 시인은 “내 몸뚱이가 칠흑의 감방 같아 아무리 발버둥쳐도 탈주는커녕 통방마저 할 수 없어”라고 한다. “왜 바퀴가 바퀴로만 보일까”, “죽음 앞에서는 예술도 부질 없어요”와 같은 문장 또한 윤회를 벗어나길 바라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침묵과 연대하기 위한 의도적인 시끄러움으로도 읽힌다.
진이정의 친구였던 유하 시인은 시인의 말을 대신한 글에서 “그의 시가 긴 세월 언어의 산화를 견디며 더욱 새로워져 있다는 것에 놀란다”며 “외로웠지만, 그만의 방외 언어를 끝까지 고수했기에 비로소 낡지 않는 새로움을, 새로움의 시적 영토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언어가 곳곳에서 충돌한다. 거리낌이 없다. 성역을 부수려는 시도와 형식들이 곳곳에서 읽힌다. “언제보아도 자연은 포르노”와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시 ‘아트만의 나날들’에서 “황혼, 두견, 소양강 처녀보다 더 슬픈/내 어릴 적의 십 원 짜리 지폐”를 통해 춘천에서 자랐던 시인의 어린시절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뿐이다. 시 ‘엘 살롱 드 멕시코’에서는 “라디오의 선율을 따라 유년의 기지촌, 그 철조망을 넘는다/그리운 캠프 페이지, 이태원처럼 보광동처럼 후암동처럼 그리운 그리운”이라고 했다. 시인은 ‘추억 거지’이고 그리움은 여전히 윤회한다. 시 ‘애수의 소야곡’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에 청춘의 사라짐을 필연적으로 느낀다.
“거꾸로 선 꿈의 세상에서, 가끔 나는 바로 선다/깜빡 꿈이란 걸 잊은 채 말이다/허나 고런 때래야,/겨우 시가 되는 것이다”
10편의 연작시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의 흐름은 상당히 복잡하다. 세기말의 느낌이 뚜렷하다. 인력과 척력이 뒤바뀌고, 구토와 희망이 합장한다. 무수한 카르마와 허망을 딛고 걸어간다. 의식이 없는 우주의 궤도가 흐른다.
시인의 본명은 박수남이다. 1959년 춘천에서 태어나 큰집에서 양자로 살았으며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이주했다. 경희대 재학 시절 굿패 동아리 활동을 했고, ‘관극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영화, 연극, 미술 등에 관한 평론을 하기도 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1993년 폐결핵을 앓다 세상을 떠난 뒤 이듬해 첫 시집이 나왔다. 속초 출신 함성호 시인을 비롯한 ‘21세기 전망’ 동인들은 흩어져있는 진이정의 시와 산문을 모아 전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가장 처음에 실려있는 시 ‘시인’의 전문은 이렇다. “시인이여,/토씨 하나/찾아 천지를 돈다//시인이 먹는 밥, 비웃지 마라//병이 나으면/시인도 사라지리라”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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