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호광장의 심리툰과 함께 - 세상과 나 바라보기] 13. 완벽한 계획
잘하지 못하면 누군가 실망할까
훌륭하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완벽주의 이면에는 불안 내재
완벽주의는 시작을 어렵게 해
열심히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 간과
완벽함보다 최선을 추구하는 것 도움
작은 성취 반복이 자존감 향상 시켜
삶은 불안과 과제의 연속입니다. 이것만 끝나면 좀 편해지려나 싶지만, 무언가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숙제가 찾아오는 게임 같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늘 선택을 해야 하기에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무턱대고 아무거나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최선의 결정을 하려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다 보면 자칫 완벽주의의 함정, 강박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학창 시절 수학을 공부하려 책을 펴면 첫 단원에는 늘 집합이 있었습니다. 큰마음을 먹고 이번 방학에는 꼭 수학을 완벽하게 정복하겠다는 마음으로 첫 단원을 공부하고 그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면 하나둘씩 모르는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뭔가 빠뜨리고 공부한 것은 없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몇 번 처음부터 공부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들은 미처 보지 못하고 방학이 끝나버렸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전체를 조망한 뒤 여러번 세세한 부분들을 익히는 반복 학습이 중요하지만 완벽주의는 그렇게 숲을 보지 못하게 하고 나무에 집착하게 합니다.
무언가 훌륭하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완벽주의의 이면에는 잘하지 못하면 누군가 실망하게 되거나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습니다. 성취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가혹한 나는 딱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내재화되어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면 스스로 실망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완벽주의는 시작을 어렵게 합니다. 작은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완벽하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어설프게 하는 것보다는 안 하고 미루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합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그렇게 막연히 미루다가 기한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서두르게 되어 오히려 업무의 완성도는 떨어집니다.
물론 완벽주의는 안전을 요구하는 분야나 정확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특성이지만 지나치게 되면 과업의 완수가 아닌 불안을 피하기 위한 기제가 될 뿐입니다. 불안해서 열심히는 하는 데 정작 필요한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자료의 디자인과 배치, 줄맞춤에 신경 쓰거나 오타를 확인하는데 집착하는 등 마지막에 정리해도 될 세세한 부분에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부분, 핵심적인 내용을 놓치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 뇌의 처리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에 한 부분에 집중하면 다른 부분들은 허술해지기 마련입니다. 자동차가 공회전하는 것과 비슷하게 일은 열심히 하지만 처리 속도도 더디게 됩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 중에는 치료에 대한 완벽주의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우울감이나 불안 같은 증상들만 없으면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불안과 감정의 변화까지도 병적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모든 상황이 안정적일 때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도 선수 생활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완벽한 상태에서 경기에 나간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범한 마음으로 순간순간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훌륭한 경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우울과 불안, 무기력이 다 없어지면 무언가를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무기력하지만 오늘은 이거라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좋은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부정적인 감정들도 희미해지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계획을 세웁니다. 처음 지속하던 일들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실행하지 못하는 날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며칠 쉬다 보면 이내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우리 안에는 완벽하지 못하면 아예 전체를 포기해버리는 극단적인 마음이 숨어있습니다. 완벽함보다는 어제보다 나은 선택,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낫습니다. 목표를 조각내서 일부라도 이루려는 노력이 지나고 보면 더 효율적입니다. 작은 성취를 반복하는 일은 자존감의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작은 일들을 스스럼없이 시작하여 지속하는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심리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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