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회사채 시장 20조원 몰렸지만 A등급 '0'…레고랜드 공포 여전
국내 회사채 시장이 새해 들어 과열양상이다. 부실 위험이 적은 회사가 4% 초중반대 금리를 보장하자 투자자들이 돈다발을 들고 몰려간다. 하지만 A등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 시장엔 여전히 '레고랜드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채권시장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월 들어 지난 11일까지 12개 기업이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이 기업들에 몰린 매수 주문은 총 20조6350억원에 달한다. 12개 회사가 필요한 회사채 발행 예정 총 금액은 2조1100억원인데, 10배에 가까운 매수주문이 몰린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선 조달규모를 예정보다 늘릴 선택지가 생겼다.
구체적으로 지난 11일 수요예측에 나선 GS에너지(신용등급 AA)는 1700억원을 모집하는데 1조5600억원 규모 매수주문이 들어왔다. SK지오센트릭(AA-)은 2000억원 모집에 1조1200억원 수요가 몰렸다. 지난 5일에는 3500억원을 조달하려던 포스코(AA+)에 3조9700억원치 주문이 쏟아졌다. 이는 2012년 회사채 수요예측 도입 이후 최고치다. 포스코는 발행금액을 2배인 7000억원으로 놀렸다. 2000억원을 조달하려던 LG유플러스(AA)에도 3조2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접수되며 발행확정액이 2배(4000억원)로 늘었다.
12개 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신용등급이 AA등급 이상이라는 것이다. 비우량으로 분류되는 A등급 기업은 단 한곳도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 지난해 말 강원도 레고랜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여파로 가라앉은 비우량 회사채까지 온기가 확산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A등급 회사채로 온기가 확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부동산금융 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해소된 상태가 아니고 글로벌 경기 둔화로 올해 기업 실적이 전반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 둔화에 따른 기업실적 저하 영향은 우량등급 기업이나 비우량등급 기업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재무안정성에서 차이가 난다. 우량등급 기업은 일반적으로 재무적 버퍼가 충분히 확보됐다. 사업 경쟁력 저하 등 구조적 문제가 아닌 경기 사이클로 인한 단기적 실적 저하 정도는 펀더멘털 훼손없이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반면 비우량등급 기업은 일반적으로 재무적 버퍼가 충분치 않아 경기 하강국면에서의 실적 저하를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신용등급 측면에서도 경기둔화기에 비우량등급 기업의 등급 하락 가능성이 더 높은 게 일반적이다.
김 연구원은 "특히 자금시장 경색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재무적 버퍼가 부족하면 유동성 압박의 정도가 더 클 수 있다는 게 현실적 위험요인"이라며 "부동산 시장 냉각기조가 이어져 브릿지론 등 부동산금융이 부실화된다면 관련 익스포져를 가지고 있는 섹터의 유동성 리스크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시장의 위험기피심리를 자극해 비우량 기업의 회사채 소화 등 자금조달 경로가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자 입장에서 신용위험 증가를 무릅쓰고 매수 대상을 A등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로 확대할 것으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PF 관련 리스크가 시장의 우려보다 적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회사의 미분양과 단기 미착공PF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양호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분양 현황을 보면 대부분 분양률이 9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책임준공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는 크지 않다는 근거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청약현황을 봤을 때 건설사별로 1~2개 현장의 미분양이 확인되지만 보유 현금으로 충분히 소화 가능한 수준"이라며 "올해 분양시장이좋지 않기에 리스크 관리를 위해 분양을 축소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건설사들의 단기 차입금 상환 리스크를 살펴봐야한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오히려 일부 회사는 단기에 차입금 상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회사별 대응 방안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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