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선택, 나경원의 진심[광화문]
"보건복지 분야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와 100세 시대 일자리, 건강, 돌봄 지원 등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적임자로 판단한다."
지난해 10월 대통령실이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장관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 부위원장에 내정하면서 밝힌 인선 배경이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직속기구인데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고령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인 만큼 정치적 고려보단 집권여당의 중진급 인사를 앉혀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위촉장을 주는 자리에서 "위원회가 집행기구처럼 일하라"면서 나 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저출산위가 금융감독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이 순수한 행정 업무 외에도 입법·사법 기능까지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행정위원회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기 쉽지 않았던 구조적인 문제를 고려해 주문한 셈이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사실상 개점휴업 중이던 저출산위도 활기를 띠었다. 나 부위원장은 우선 저출산위 사무처 전 직원들과 인구정책 간담회를 열고 '인구정책기본법 제정'을 전면에 내걸었다. 인구정책기본법은 앞서 운영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회 산하 '인구와 미래전략 태스크포스(TF)'에서 공동자문위원장을 맡은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강조해온 화두다. 현재 인구정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인구전략의 복지정책화, 권한과 책임 없는 거버넌스 체계 등으로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새로운 법령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나 부위원장이 인구정책기본법을 취임 일성으로 꺼낸 이유다.
첫 단추가 꿰어지니 조직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나 부위원장은 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국토교통부 등 7개 당연직 부처와 법무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 4개 유관 부처가 참여하는 '인구미래전략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소집했다. 곧바로 김진표 국회의장을 찾아 "저출산위 기관 명칭을 인구미래전략위원회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달하며 국회의 협력과 지원을 요청했다. 고령화·저출산이란 협소한 정책 목표보다 인구감소 완화와 변화하는 인구 규모에 따른 국가적 대응전략을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담기 위해서였지만, 관련법 개정없인 추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청년과 소득보장, 교육, 주거지역, 노동고용 등 인구정책과 밀접한 분야의 전문가 15명을 민간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으로 전반적인 진용 정비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여당이 차기 당대표 선출에 나서면서 저출산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 나 부위원장이 잇따라 1위를 기록하자 당안팎의 출마 요구가 끊이지 않으면서다. 나 부위원장이 "고심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장고에 들어간 모습이 보인 것도 논란을 부채질했다. 저출산위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부 때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정치인 출신 부위원장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결국 기우는 현실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첫 범부처 인구대책이 발화점이 됐다. 나 부위원장이 결혼과 출산에 따른 대출 탕감이 핵심인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언급한 것을 두고 대통령실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선긋기에 나서면서 갈등이 노출됐다. 유력 당권주자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지자 나 부위원장은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임명된지 3개월만이다. 당권 도전에 인구정책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힐난이 제기된 것도 이 시점부터다.
물론 당대표 출마를 둘러싼 실리를 챙기는 건 정치인 '나경원'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인구위기는 국가 존망을 좌우한다"며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호소하던 엄마 '나경원'의 진심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길어지는 침묵이 국가의 미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결론나길 기대해본다.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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