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예찬[이준식의 한시 한 수]〈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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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었다는데 봄은 아직 오지 않았고, 눈 내렸다 하는데 그 향기가 유별나다.
노매파(盧梅坡)가 '흰 빛깔은 매화가 눈보다 조금 못하고, 향기라면 아무래도 눈이 매화를 못 이기지'라거나('눈과 매화'), 왕안석이 '멀리서도 매화가 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건,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지'('매화')라 한 것 등이 그런 예다.
한데 시인은 매화의 여러 미덕 중에서 그 공평무사한 개화 모티프에 눈길을 주었으니 독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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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밖 비스듬히 뻗은 가지, 어느 시골집.
쓸쓸한 초가든 부귀한 고대광실이든,
심은 장소는 서로 다를지라도 꽃이 피는 건 매한가지.
(道是花來春未, 道是雪來香異. 竹外一枝斜, 野人家. 冷落竹籬茅舍, 富貴玉堂瓊謝. 兩地不同裁, 一般開.)
―‘소군원(昭君怨)·매화(梅花)’ 정역(鄭域·남송 초엽)
매화에 대한 시인의 찬사가 나지막하게 이어진다. 애써 과장하지도 도드라진 특징을 과시하는 법도 없이 조곤조곤 매화의 미덕을 보여준다. 봄이 오기도 전에 홀로 추위를 뚫고 의연히 꽃 피우는 건 범접하지 못할 저만의 끈기 때문일 테다. 온 세상 눈 가득 내린 듯 하얀 천지에 아련히 퍼져나오는 유별난 향기, 아, 매화였구나. 그제야 비로소 눈에 띌 만큼 그 개화는 실로 겸손하다. 그 꽃, 그 향기가 시골집 댓가지 위에 새록새록 피어난다. 뽐내지도 자만하지도 않는 가만가만한 고절(孤節)을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뿐이랴. 빈부귀천을 구분하지 않는 저 너그러운 맘씨는 설중군자(雪中君子)의 고아한 기품으로 읽어야겠다.
매화를 노래한 한시에서는 눈과 향기의 비유가 곧잘 동원된다. 노매파(盧梅坡)가 ‘흰 빛깔은 매화가 눈보다 조금 못하고, 향기라면 아무래도 눈이 매화를 못 이기지’라거나(‘눈과 매화’), 왕안석이 ‘멀리서도 매화가 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건,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지’(‘매화’)라 한 것 등이 그런 예다. 한데 시인은 매화의 여러 미덕 중에서 그 공평무사한 개화 모티프에 눈길을 주었으니 독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소군원’은 송사(宋詞)의 곡조명으로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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