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럽 4대 강국과도 군사협력 속도전
일본이 미일 동맹뿐만 아니라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4대 강국과의 외교·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지렛대 삼아 아시아의 ‘안보 중추 국가’로 나서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유럽 순방 중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리시 수낙 영국 총리와 ‘(군사협력) 원활화 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에 서명했다. RAA는 두 나라 군대가 상대국에 입국할 때 비자를 면제받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을 쉽게 반입하는 합의서로 사실상 준(準)군사동맹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함정이나 전투기도 협정을 맺은 국가에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함으로써 대규모 군사훈련을 용이하게 하고, 유사시 상호 파병을 쉽게 하는 장점이 있다. 이번 조치는 2021년 9월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의 일본 요코스카항 입항만큼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12일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영국과 RAA를 체결한 뒤 “일본과 영국은 특별한 전략적인 파트너”라며 “이런 파트너와 중요한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간 안전보장과 방위협력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수낙 총리에게 유사시 적 기지 공격이 가능한 ‘반격 능력’과 규슈 남부에서 대만 인근까지 이어진 난세이(南西)제도를 요새화하는 일본의 신규 안보 전략을 설명했다. 수낙 총리는 “영일 관계는 예전에 없을 정도로 긴밀해졌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국의 관여도 강고해졌다”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법의 질서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일본과 프랑스가 연대를 강화한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일본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겠다”며 손을 잡았다. 일본과 프랑스는 올 상반기에 외교·국방장관 2+2회의를 개최하고 자위대와 프랑스군 간 왕래와 합동 군사훈련도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과 프랑스는 2019년 자위대와 샤를 드골 항모가 참가하는 합동 훈련을 계기로 양국 군사협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10일 로마에서 열린 기시다 총리와 조르자 멜라니 이탈리아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외교·국방장관 2+2회의도 개최한다. 일본은 영국·이탈리아와 공동으로 차세대 전투기도 개발할 계획이다.
일본은 독일과는 2년 전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뒤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도쿄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를 비롯한 독일 주요 장관들이 참여하는 ‘양국 정부 간 회의’를 열 예정이다. 2021년 11월 독일 해군 호위함이 일본에 첫 기항했고 작년 9월에는 독일 공군 전투기인 유로파이터가 일본에 파견돼 자위대와 공동 훈련했다.
일본은 미일 동맹만으로는 중국·러시아의 패권주의를 견제할 수 없다고 판단, 유럽 4대 강국과의 안보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국 등도 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판단하에 일본과의 협력을 반기고 있다. 일본이 신규 안보 전략을 채택해 방위력 강화와 반격 능력 보유를 명기한 데 대해 4대 강국이 모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중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미국·유럽 간 연대만으로는 국제 질서의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유럽 국가들 사이에)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한 군사 전문가는 “일본은 1900년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등과 다자 또는 양국 간 동맹을 맺고 주요 군사 강국으로 활동했다”며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엔 미국의 그늘에서 ‘전수방위(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로 머물렀지만, 국제 정세가 다시 불안정해지자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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