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행정구역 합치자”… 예천 “일방추진 결사 반대”
경북도청을 공동으로 유치했던 경북 안동시와 예천군이 ‘행정구역 통합’ 문제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안동시는 “인구도 줄고 경제도 쪼그라들어 도시 소멸로 가지 않으려면 합쳐야 한다”며 안동·예천 행정 통합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예천군은 “일방적 추진이 웬 말이냐”며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맞닿아 있는 안동시와 예천군은 대구에서 이전한 경북도청을 공동으로 유치했다. 2016년 조성이 끝난 도청 신도시는 안동시 풍천면 일대의 도청 건물, 예천군 호명면 일대의 주거·상업 시설 등으로 이뤄졌다. 두 지역 면적이 각각 절반쯤 된다. 안동시는 인구가 약 15만4000명, 예천군은 약 5만5000명이다.
도청 신도시가 자리를 잡으면서 안동 도심의 인구와 상권이 신도시로 빨려 들어갔다. 갈수록 도청 신도시가 커지자 ‘세종시처럼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따라 안동에서 ‘안동·예천 통합론’을 들고나왔다.
안동시는 통합 관련 토론회와 포럼, 설명회 등을 여는 등 적극적으로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안동·예천 행정구역 통합 추진 지원 조례안’을 안동시의회에 제출했다. 현재 상임위 계류 중인 이 조례안은 행정구역 통합을 위한 위원회 구성 및 경비 지원, 통합 추진 기관·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안동시는 또 안동·예천 통합 추진을 올해 중점 시책 중 하나로 정해놓고 있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12일 “안동·신도시·예천은 상생 발전을 추구해야 할 공동 운명체”라며 “지역 소멸 위기가 가중되는 현시점에 신도시가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된다면 안동·예천이 명맥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어 행정 통합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안동과 예천 주민에게 통합을 공론화하고 주민 투표를 통해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예천군은 민간 차원의 통합반대추진위가 결성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현직 공무원 등 군민 50여 명으로 구성된 ‘안동 예천 행정구역 통합 반대 예천군추진위원회’는 지난 9일 반대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안동시의 일방적 통합 추진은 안 된다”며 “예천과 안동을 통합할 경우 면적이 지나치게 커지고 예산 규모 손실도 발생하며 흡수 통합의 우려도 있는 등 모든 면에서 통합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예천 지역 한 주민은 “덩치 작은 예천이 덩치 큰 안동에 흡수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통합에 반대한다”며 “유수한 전통과 고유성을 지닌 예천이 안동에 예속, 종속되고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예천 지역 유림 단체에서도 ‘통합’이 아니라 ‘병합’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예천군 유림 단체 소속 인사 100여 명은 지난해 10월 예천문화원에 모여 행정구역 통합 추진 반대 결의 대회를 열었다. 권창용(77) 예천문화원장은 “통합을 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주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 뚜렷한 설명도 없이 정치인들만 주창하는 안동시의 통합론은 의미가 없다”며 “계속해서 행정 통합을 거론하면 안동시장을 상대로 예천군민이 겪고 있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천군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김학동 군수는 “원도심 공동화현상은 두 지역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안동·예천 행정구역 통합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경북도청이 있는 신도시 발전과 안동·예천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통합론은 검토해 볼 가치는 있다”면서도 “주민 공론화 과정도 없이 한쪽만의 밀어붙이기식 통합은 오히려 두 지역 주민들 간 갈등만 초래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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