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없인 변화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2023. 1. 13. 03:04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며 모든 것의 왕이다. 전쟁이 어떤 이들을 신으로, 어떤 이들을 사람으로 드러냈고, 또 어떤 이들은 노예로, 어떤 이들은 자유인으로 만들었다.” 기원전 6세기 에페수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말이다. 그는 평생 동안 큰 전쟁을 겪지 않았다. 물론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웃 나라와의 전쟁을 부추긴 전쟁 예찬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쟁의 논리’를 내세워 세상의 일들을 설명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성서에도 등장한 ‘로고스’ 사상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의 에페수스는 번성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특히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유명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여신의 제사장과 에페수스의 왕을 겸직하는 왕가의 출신이었다. 철학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그는 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왕권보다 지혜를 더 바랐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지혜는 서양 정신사 곳곳에 영원히 살아남았다. 신약성서 ‘요한복음’도 이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증거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중략)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은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옮긴 말이다. 태초부터 있던 로고스, 모든 것을 만들어낸 로고스에 대해 처음 가르친 사람이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였다. 로고스의 지혜가 성서에 받아들여진 데는 그럴듯한 내력이 있다. 대다수 성서학자들은 예수의 제자 요한이 말년에 예루살렘에서 에페수스로 거처를 옮긴 뒤 거기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추측한다. 요한복음의 기록 연대가 서기 80∼90년쯤이라면 헤라클레이토스가 죽고 500년 뒤의 일이다. 그사이 그의 로고스 사상이 널리 퍼졌고 요한복음서도 그 영향 아래서 기록되었던 것이다.
‘로고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말’ ‘계산’ ‘이성’을 뜻하지만, 이성이 관계하는 ‘척도’ ‘비율’ ‘원리’ ‘법칙’ ‘근거’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어떤 앎도 로고스 없이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앎은 우리의 ‘이성’이 세상의 ‘법칙’을 찾아내어 ‘말’에 담은 것이니까. 예를 들어 생물학(biology)은 생명(bios)에 대한 ‘로고스’이고 심리학(psychology)은 영혼(psychē)에 대한 ‘로고스’이다.
음양의 대립은 어디에나 존재
세상의 법칙인 로고스는 어떻게 존재할까? 그 내용은 또 어떤 것일까? 로고스는 자연 세계와 떨어져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자연 세계의 어떤 변화나 운동도, 자연 세계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로고스를 떠나서 있을 수 없다. 로고스에 따라 운행하는 세상의 모습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의 운동에 비유했다. 세상은 “척도에 따라 타오르고 척도에 따라 꺼지는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다. 세상이 불의 운동이라면, 그 운동의 척도가 바로 세상의 운동과 변화를 주재하는 로고스인 셈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 법칙의 내용을 ‘반대자들의 대립 관계’에서 찾았다.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설을 생각해 보자.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태초의 시작에서 음과 양이 갈라지고 이로부터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이 생겨나며 이로부터 만물이 생겨나고 변화하며 사라진다. 물질로 이루어진 것 가운데 음양의 대립을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를 이런 음양오행의 도(道)와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의 본질을 반대자들의 대립 관계에서 찾았다. 모든 과정에는 그에 반대되는 과정이 있다. 서로 반대되는 두 과정 A와 B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상보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젊음과 늙음은 하나이다. 낱낱의 사물 안에도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 대립해서 공존하기는 마찬가지다. 둥글게 도는 바퀴가 마차를 곧게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원과 직선이 하나이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하나이다.” 똑같아 보이는 것도 관점을 바꾸면 반대의 성질을 내보인다. “바닷물은 가장 깨끗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역겨운 것이어서, 물고기에게는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생명을 주지만, 사람들에게는 마실 수 없는 것이고 죽음을 부른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신 앞에서는 원숭이처럼 보인다.”
대립과 갈등은 ‘살아 있음의 힘’
한순간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거기에 반대자들의 대립과 갈등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활대에 시위를 얹은 활을 생각해 보라. 활은 정지한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당기는 힘과 미는 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숨어 있다. 바깥세상의 현상들만 그럴까? 우리 마음속도 똑같다. 분노와 연민, 절망과 희망, 미움과 사랑이 끊임없이 힘을 겨루며 하나가 다른 하나의 꽁무니를 쫓는다. 그런 운동 속에 우리의 마음이 존재하고 우리의 삶이 존재한다. 그러니 대립과 갈등은 우리가 살아 있음의 증거가 아닌가? 그와 똑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대립하는 힘들의 각축장이고 이 힘들의 대립 속에서 끊임없이 이렇게 되고 저렇게 바뀐다. 그러니 전쟁 상태가 모든 것의 ‘됨’, ‘생성’의 본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세상의 평화를 원하고 마음속의 평정을 바란다. 또 마음 안팎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좋은 상태가 항상 똑같이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가 꿰뚫어 본 세상과 인생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 안에도 반대되는 힘들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있고, 이 힘들의 우열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변화한다. 그런 뜻에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의 법칙으로써 파악한 세상은 전쟁 상태의 세상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기 어렵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모든 대립과 갈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로고스를, 대립과 갈등 속의 변화를 긍정하라고. 그것이 세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살아 있음의 힘이라고. 반대자들 사이의 대립이 없다면 어떤 생성도 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의 에페수스는 번성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특히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유명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여신의 제사장과 에페수스의 왕을 겸직하는 왕가의 출신이었다. 철학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그는 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왕권보다 지혜를 더 바랐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지혜는 서양 정신사 곳곳에 영원히 살아남았다. 신약성서 ‘요한복음’도 이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증거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중략)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은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옮긴 말이다. 태초부터 있던 로고스, 모든 것을 만들어낸 로고스에 대해 처음 가르친 사람이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였다. 로고스의 지혜가 성서에 받아들여진 데는 그럴듯한 내력이 있다. 대다수 성서학자들은 예수의 제자 요한이 말년에 예루살렘에서 에페수스로 거처를 옮긴 뒤 거기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추측한다. 요한복음의 기록 연대가 서기 80∼90년쯤이라면 헤라클레이토스가 죽고 500년 뒤의 일이다. 그사이 그의 로고스 사상이 널리 퍼졌고 요한복음서도 그 영향 아래서 기록되었던 것이다.
‘로고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말’ ‘계산’ ‘이성’을 뜻하지만, 이성이 관계하는 ‘척도’ ‘비율’ ‘원리’ ‘법칙’ ‘근거’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어떤 앎도 로고스 없이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앎은 우리의 ‘이성’이 세상의 ‘법칙’을 찾아내어 ‘말’에 담은 것이니까. 예를 들어 생물학(biology)은 생명(bios)에 대한 ‘로고스’이고 심리학(psychology)은 영혼(psychē)에 대한 ‘로고스’이다.
음양의 대립은 어디에나 존재
세상의 법칙인 로고스는 어떻게 존재할까? 그 내용은 또 어떤 것일까? 로고스는 자연 세계와 떨어져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자연 세계의 어떤 변화나 운동도, 자연 세계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로고스를 떠나서 있을 수 없다. 로고스에 따라 운행하는 세상의 모습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의 운동에 비유했다. 세상은 “척도에 따라 타오르고 척도에 따라 꺼지는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다. 세상이 불의 운동이라면, 그 운동의 척도가 바로 세상의 운동과 변화를 주재하는 로고스인 셈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 법칙의 내용을 ‘반대자들의 대립 관계’에서 찾았다.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설을 생각해 보자.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태초의 시작에서 음과 양이 갈라지고 이로부터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이 생겨나며 이로부터 만물이 생겨나고 변화하며 사라진다. 물질로 이루어진 것 가운데 음양의 대립을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를 이런 음양오행의 도(道)와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의 본질을 반대자들의 대립 관계에서 찾았다. 모든 과정에는 그에 반대되는 과정이 있다. 서로 반대되는 두 과정 A와 B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상보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젊음과 늙음은 하나이다. 낱낱의 사물 안에도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 대립해서 공존하기는 마찬가지다. 둥글게 도는 바퀴가 마차를 곧게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원과 직선이 하나이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하나이다.” 똑같아 보이는 것도 관점을 바꾸면 반대의 성질을 내보인다. “바닷물은 가장 깨끗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역겨운 것이어서, 물고기에게는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생명을 주지만, 사람들에게는 마실 수 없는 것이고 죽음을 부른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신 앞에서는 원숭이처럼 보인다.”
대립과 갈등은 ‘살아 있음의 힘’
한순간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거기에 반대자들의 대립과 갈등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활대에 시위를 얹은 활을 생각해 보라. 활은 정지한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당기는 힘과 미는 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숨어 있다. 바깥세상의 현상들만 그럴까? 우리 마음속도 똑같다. 분노와 연민, 절망과 희망, 미움과 사랑이 끊임없이 힘을 겨루며 하나가 다른 하나의 꽁무니를 쫓는다. 그런 운동 속에 우리의 마음이 존재하고 우리의 삶이 존재한다. 그러니 대립과 갈등은 우리가 살아 있음의 증거가 아닌가? 그와 똑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대립하는 힘들의 각축장이고 이 힘들의 대립 속에서 끊임없이 이렇게 되고 저렇게 바뀐다. 그러니 전쟁 상태가 모든 것의 ‘됨’, ‘생성’의 본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세상의 평화를 원하고 마음속의 평정을 바란다. 또 마음 안팎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좋은 상태가 항상 똑같이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가 꿰뚫어 본 세상과 인생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 안에도 반대되는 힘들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있고, 이 힘들의 우열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변화한다. 그런 뜻에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의 법칙으로써 파악한 세상은 전쟁 상태의 세상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기 어렵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모든 대립과 갈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로고스를, 대립과 갈등 속의 변화를 긍정하라고. 그것이 세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살아 있음의 힘이라고. 반대자들 사이의 대립이 없다면 어떤 생성도 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로고스의 지혜와 세상의 진상을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탐색했다.” 우리도 자신을 탐색한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지혜를, 아니 그가 보지 못한 세상의 다른 모습까지 찾아낼지 모른다. 2023년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지혜를 얻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어차피 바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왕권을 버린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유까지 함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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