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선거제도 개편의 목적
새해 들어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언급했고,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2월 중순까지 복수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본회의에 제출하면 국회의원 전원회의에 회부해 3월 중순까지는 내년에 시행할 총선 선거제도를 획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253석을 뽑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30석 그리고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17명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만 적용하기로 했던 한시적 제도이다. 준연동형은 정당 득표율에 비례한 전체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석수 50%를 제외한 수치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결정하고,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수와 별도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정한다.
그런데 6분의 5 이상의 의석을 소선거구제로 뽑음으로 인해, 거대 양당은 10분의 1에 해당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거대 양당은 소위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무력화되었다. 따라서 현행 선거제도는 사실상 소선거구제도와 별 차이가 없게 되었고, 선거제도 개편 주장도 여전히 소선거구제도의 문제점에 집중되고 있다.
소선거구 선거제의 문제점으로 국민의 지지와 정당 의석 사이의 괴리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2020년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국회 의석점유율은 위성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을 합하면 94.3%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위성정당을 포함한 양당의 정당 득표율은 79.4%에 불과했다. 결국 소선거구제에서는 거대 양당의 후보가 아니면 당선이 어렵고,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거의 모든 의석을 차지하는 지역의 정당 편중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소선거구 선거제 자체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님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도가 양당 체제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으나, 이런 양당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민의 지지를 받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양당을 통해 등장하기 어려운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 문화와 정당의 후보자 선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 새로운 정치 세력들이 기존 정당의 후보자 선출 과정을 통해 진입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현 한국 정당 체제와 소선거구제도의 결합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양당은 오히려 적극적 지지자들만이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양당의 적극적 지지자들의 공통적 특징은 상대방을 극히 혐오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적극적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아 후보로 선출되거나 당권을 잡으려면 이런 혐오를 더욱 조장해야 한다. 이런 정치 과정에서 국가적 정책 대결보다는 인신공격과 지역 개발 공약이 주요 정치 의제가 되고,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상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선구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선출된 양당의 후보 중에 한 명을 선택하도록 국민을 강요하고 있다. 제3의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어도 양당 후보 중 더 싫은 한 명이 당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른바 ‘사표 방지’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21대 총선의 지역구 투표에서 거대 양당의 정당별 득표율은 91.4%로, 위성정당을 포함한 양당의 정당 득표율인 79.4%보다 12%포인트나 높았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양당의 지지율이 70% 수준임을 감안하면,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정당 투표에도 역시 사표 방지 효과가 작동함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 정당체제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당위론적 주장에 그칠 수 있다. 결국 선거구제의 개편을 통해 정당이 스스로 문제를 고쳐나가도록 유인해야 한다. 그러나 소선구제만 바꾸면, 이런 정당-선거구제 결합에서 발생하는 정쟁과 무책임한 지역 개발 공약 경쟁을 국가적 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탄소중립으로 이행과 같은 정책 경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변화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의 정당 득표율이 국회 의석수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선거구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국가적 정책이 선거의제가 되고 공론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선거제도 개편을 정치권 중심의 닫힌 토론으로부터 시민들이 참여하는 열린 공간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기존 정당과 의원들이 기득권을 강화하는 꼼수로 선거제도 개편을 마무리한다면, 민주주의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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