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수능 추진한 서남수 “文 청와대 입김에 변질, 아이들에게 미안”
문·이과 통합 수능을 처음 고안했던 서남수 전(前) 교육부 장관이 이후 이과생의 ‘문과 침공’ 등 문·이과 통합 수능 부작용이 불거지자 “대입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서 전 장관은 12일 본지 통화에서 “문·이과 통합 교육이라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그에 맞게 수능 개편을 책임지고 완수하지 못했다”면서 “결국 아이들이 여러 문제를 겪게 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서 전 장관은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해 2월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와 함께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란 책도 펴냈다.
그는 저서에서 자신이 제안한 문·이과 통합 수능이 2022학년도 처음 시작됐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문과와 이과가 여전히 나눠져 있다”면서 “문과와 이과 학생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한 것으로 나타난 현행 수능을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 부를 수 없다”고 평가했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문·이과 통합 수능 과정에서 이과생에게 유리한 결과가 점점 두드러지자 개선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첫 교육부 장관이었던 서 전 장관은 2013년 9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과 수능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까지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2021학년부터 문·이과 통합 수능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문·이과 구분 없이 모두가 배우는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수능 과목에 넣고, 수학도 문·이과가 공통적으로 배우는 범위를 중심으로 한 과목에 통합하려 했다.
하지만 서 전 장관이 중간에 물러나면서 궤도를 이탈했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형으로 확정됐지만,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 수능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수능 수학을 한 과목으로 통합하지 못했다. 처음 구상과 달리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선택과목이 도입됐다. 확률과 통계는 문·이과가 모두 배우지만 미적분과 기하는 주로 이공계 지원자들이 듣는다. 그런데 대학 이공계열 학과들이 수학 미적분·기하와 과학탐구를 지원자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면서, 자연스레 학생들도 이런 과목을 듣느냐에 따라 이과와 문과로 나뉘게 됐다. 통합사회·통합과학은 학교에선 배우긴 하지만 수능 과목에서 빠지다 보니 중요성이 퇴색됐다.
서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수능 변별력을 높여서 수능 위주 전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고, 이 때문에 수능은 문·이과 통합이라는 애초 취지를 버리고 변별력 강화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문·이과 통합이란 대전제에서라면 ‘미적분’과 ‘기하’ 등 이과생이 주로 듣는 선택과목은 수능 과목에서 제외해야 했지만, 변별력을 높이라는 청와대 압박에 결국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문 정부가 변별력 강화에 집착한 이유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여러 가지 ‘정무적 판단’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수능 개편안 발표를 앞둔 2018년 7월 ‘숙명여고 쌍둥이 내신 성적 조작’ 사건이 일어났고 “(수능 성적이 중요한)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갑자기 커졌는데 그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수학계 입김도 한몫했다. 수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미적분과 기하가) 수능 과목에서 빠지면 학생들이 공부를 소홀히 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격렬히 반대했다. 서 전 장관은 “자기들 전공 영역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교육부가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교과 이기주의에 좌초됐다”고 했다.
문·이과 통합 핵심인 통합사회·통합과학이 수능 과목에서 빠지는 과정에서 이 중요성을 대변해줄 전문가가 부족했다는 점도 서 전 장관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정치·경제·역사(사회)나 물리·화학·생물(과학) 등 개별 과목은 전문가가 분명 있는데 ‘통합’ 과목은 누가 전문가인지 애매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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