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보수 가톨릭의 상징, 베네딕토 16세 교황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hanmail.com 2023. 1.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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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장례미사가 거행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는 2005년 선출돼 약 8년간 재임한 제265대 교황입니다.
하지만 1981년 신앙교리성(주로 기독교의 교리를 감독하는 업무) 장관으로 발탁되어 바티칸에 입성한 이후 그는 오랜 기간 가톨릭 보수 진영을 대변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여러 사안을 두고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인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현 교황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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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장례미사가 거행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는 2005년 선출돼 약 8년간 재임한 제265대 교황입니다. 생전의 그는 엄격한 교리해석에 정통한 보수적인 성향으로 유명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뛰어난 신학적 지식과 도덕적인 강인함, 그리고 논리적인 말솜씨가 장점이라고 평가됩니다. 우선 그는 가톨릭 내부에서도 매우 뛰어난 신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제로 입문한 초기부터 “모든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온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자처했습니다.
교황청 표준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2년)와 교리 공식 요약서(2005년)의 편찬을 총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훗날 보수적인 신학자로 평가받지만, 한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의 개혁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1년 신앙교리성(주로 기독교의 교리를 감독하는 업무) 장관으로 발탁되어 바티칸에 입성한 이후 그는 오랜 기간 가톨릭 보수 진영을 대변했습니다.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상이나 새로운 신학적 조류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아메리카의 해방 신학에 반대하고, 교황무류성(‘교황의 결정은 성령으로 보증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리)에 대한 의혹에 맞서 대립한 게 대표적 예입니다. 교황 재임 기간 동안에는 낙태, 동성애, 종교 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등의 문제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은 사람이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여러 사안을 두고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인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현 교황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여, 이들의 갈등과 조화를 흥미롭게 풀어낸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는 2013년 고령 및 건강 등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레고리 2세 이후 598년 만의 일입니다. 사실 교황은 종신직입니다. 그래서 그의 갑작스러운 퇴위 결정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인 이면에는 보수적이고 강경했던 만큼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과감하게 교황을 그만둔 것도, 정치적으로 자신과 반대 성향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임에 큰 반대나 방해를 하지 않았던 것도 포함해서요. 세간의 비판과 다소 부정적인 평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상대방을 받아들일 줄 알고, 자신만의 원칙을 평생 고수해 온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어쩌면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서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정말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뛰어난 신학적 지식과 도덕적인 강인함, 그리고 논리적인 말솜씨가 장점이라고 평가됩니다. 우선 그는 가톨릭 내부에서도 매우 뛰어난 신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제로 입문한 초기부터 “모든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온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자처했습니다.
교황청 표준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2년)와 교리 공식 요약서(2005년)의 편찬을 총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훗날 보수적인 신학자로 평가받지만, 한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의 개혁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1년 신앙교리성(주로 기독교의 교리를 감독하는 업무) 장관으로 발탁되어 바티칸에 입성한 이후 그는 오랜 기간 가톨릭 보수 진영을 대변했습니다.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상이나 새로운 신학적 조류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아메리카의 해방 신학에 반대하고, 교황무류성(‘교황의 결정은 성령으로 보증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리)에 대한 의혹에 맞서 대립한 게 대표적 예입니다. 교황 재임 기간 동안에는 낙태, 동성애, 종교 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등의 문제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은 사람이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여러 사안을 두고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인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현 교황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여, 이들의 갈등과 조화를 흥미롭게 풀어낸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는 2013년 고령 및 건강 등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레고리 2세 이후 598년 만의 일입니다. 사실 교황은 종신직입니다. 그래서 그의 갑작스러운 퇴위 결정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인 이면에는 보수적이고 강경했던 만큼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과감하게 교황을 그만둔 것도, 정치적으로 자신과 반대 성향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임에 큰 반대나 방해를 하지 않았던 것도 포함해서요. 세간의 비판과 다소 부정적인 평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상대방을 받아들일 줄 알고, 자신만의 원칙을 평생 고수해 온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어쩌면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서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정말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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