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의 생각] 한국은 여기까지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2023. 1. 13.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조들은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 1902년생으로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외할아버지가 생전에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잔인한 장면과 다른 증언도 있었지만, 분명하고 일관된 사실이 하나 있다. 조선 땅에서 일본인은 상전이고 특권층이었다는 것.

내 인생 전반부에는 군인들의 통치를 받았다. 군 출신 대통령은 왕과 같았고 득세한 군인들은 모든 지위와 부를 독점했다. 그들 사돈의 팔촌까지 각종 이권을 나누어 먹었지만 다들 그러려니 했다. 어쩌다 그들 중 비위 사실로 처벌받는 경우도 그들 내부 갈등과 알력 때문이었지 상식적인 형평성과는 거의 상관이 없어 보였다. 당시 정치군인은 귀족과 같은 특권층이었다.

다시 상전과 특권층의 시절이 도래하는가 싶은 요즘이다. 소위 ‘신성가족’이라고 해서, 검사와 그 일족들은 비위 사실이 드러나도 수사받지 않고 기소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다. 설사 어쩔 수 없이 드러나 전 국민이 주시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법원이 비호하고 언론이 대충 눈감아 준다. 이 같은 검찰통치에 저항이라도 하려 들면 온갖 종류의 법기술이 동원되어 무슨 죄라도 나올 때까지 고발, 압수수색, 기소, 처벌의 조리돌림을 면할 길 없다.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과거 군인들의 권력독점과 현재 검사집단의 행태는 유사점이 대단히 많다. 그 군인들을 옹위하여 이권부스러기를 받아 챙기는 민간인이 넘쳐났듯이 검찰권력 주위에 몰려드는 정치 불나방들이 온 언론을 뒤덮는 양상. 오늘의 한국은 어렵게 얻은 민주정이 특권이 부여된 귀족정으로 넘어가려는 이행기 현상으로 비틀거린다. 얼마나 많은 얼토당토않은 비리와 월권이 넘쳐나는지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헌법정신과 합법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모든 역사는 발전을 향해 간다는 헤겔의 언명과는 달리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고 순환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기소되고 처벌받을 것이다. 하나가 틀어지면 또 다른 사안, 또 다른 혐의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 어려운 기술이 동원되지도 않는다. 검사들은 온갖 사람에게서 온갖 진술을 받아내 언론에 뿌려주고 언론회사 직원들은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충실히 전파하며 기자라는 직분을 만끽할 것이다. 말이 되고 안 되고는 그리 상관이 없다. 가령 그의 가족이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70차례가 넘는 압수수색을 하여 무려 7만8000원이 수상하다는 엄청난 결과를 발표해도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700억 원이나 7만8000원이나 위법은 마찬가지라는 기술이 먹혀드니까.

대신 뇌물을 50억씩 나누어 가졌다는 클럽의 구성원들은 특별한 비호를 받고 대부분 수사조차 받지 않는다. 심지어 언론에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신성가족이고 특권층이고 지배자들이니까. 역시나 귀족정의 도래다. 문득 내가 내는 세금 생각이 난다. 7만8000원의 죄상을 밝히기 위해 몇십 차례씩 행차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의 월급 활동비 사무실 비용 기타 그들이 ‘나으리’로서 대접받느라 치러지는 사회적 비용까지 합하면 나는 얼마나 열심히 세금을 바쳐야 하는 건지. 그들과 그들 일족의 영화를 위해 꼬박꼬박 바쳐야 하는 과금들이 마치 벌금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번성하고 G7에 초청받고 남북 간 교류가 생겨나는 바람에 이른바 ‘국뽕’에 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최빈국에서 출생해 일류국가의 일원이 되었다는 신화적 스토리로 자부심이 충만했다. 그러나 이제 국뽕은 완전히 버린다. 늘 ‘조선놈은 안돼!’ 하는 한탄을 입에 달고 사셨던 외할아버지처럼 나 역시 한국은 여기까지구나, 하는 낙망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올해로 딱 육십대 중반이 되어 나이 든 자의 여유로운 시야와 관용의 정신을 가지려던 마음 역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저 한국은 여기까지구나 하는…. 간절한 민족해방의 염원도 독재타도의 함성도 옛일인 듯싶었으나 이제 특권철폐의 구호를 들고 거리로 나설거나. 그럴 의욕도 힘도 없다. 한국은 여기까지니까.

이제부터 교활한 생존술을 터득해 나가야 할까 싶다. 일가붙이 중에 검사나 그 가족은 없는지, 지인 중에 그 신흥귀족들과 깊이 연관된 사람은 없는지. 뒷전에서 청탁하거나 면제받을 일은 뭔지. 제도며 법규 따위는 별로 쓸모가 없어질 테니까 오로지 인맥, 인맥을 총동원해 살아갈 방도를 도모할 일이다.


하긴 오로지 우상향의 시절을 달려왔으니 아래로 고꾸라지는 체험도 스릴 있으리라. 보자.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가 더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 보자, 보자. 이제부터 낱낱이 하나하나 보자꾸나!

※외부 필자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