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대부중개 플랫폼에 불법 사채업자 판친다
30대 김모씨는 작년 10월 집안일로 급전이 필요해 대부중개 플랫폼 ‘대출나라’ 홈페이지에 “100만원을 빌리고 싶다”는 상담 글을 올렸다. 글을 보고 A 대부업체가 전화를 걸어왔다. “등록된 대부업체”라며 “1주일 후 120만원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당일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이자가 20%니까 1년으로 환산하면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훌쩍 뛰어넘는 연 1000%대의 고금리였지만, 버젓한 중개 플랫폼에서 제휴가 된 등록 대부업체가 제시한 조건이라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하지만 A업체는 김씨가 플랫폼에 남긴 연락처 등 개인 정보를 불법으로 넘겨받은 무등록 사채업자였다.
실직 상태였던 김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본색을 드러냈다. 1주일마다 대출 연장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붙였고, 상환 요구는 협박 수준으로 높아졌다. 100만원을 빌렸는데 한 달 만에 300만원이 됐고, 매달 200만원씩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김씨는 “죽기 전에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해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고 했다.
인터넷의 대부 중개 플랫폼이 불법 사채 영업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을 통해 합법적인 대부업체와 연결될 것이라고 기대해 상담 글을 남기지만, 이들이 남긴 연락처가 불법 사채업자에게 유출되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카드사 등의 문턱도 넘기 어려워 대부업체를 찾는 사람들이 이런 불법 업체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금감원 불법 사금융신고센터에 접수된 무등록 대부업체로 인한 고금리, 불법 추심 피해는 지난해 4617건으로 2019년(2464건)의 2배 가까이 늘었다.
◇등록 업체만 있을 거라 믿었는데
‘대출나라’ ‘대출세상’ ‘대출고고’ 등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대부 중개 플랫폼은 30여 곳에 달한다. 비대면(홈페이지 형태)이긴 하지만 중개 방식은 전화를 이용한다. 대출 희망자가 플랫폼 홈페이지에 광고된 대부업체 전화번호로 직접 연락하거나, 대출상담 게시판에 원하는 대출 조건(금액, 기간)과 연락처를 남기는 방식이다.
문제는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플랫폼에 남긴 개인정보가 불법 사채업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된다는 점이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플랫폼과 입점 광고를 맺은 등록 대부업체만 관련 정보를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사채업자들에게도 넘어가고 있다”며 “등록 대부업체가 자신들과 연계된 사채업자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팔면서 무법지대가 됐다”고 말했다. 즉, 플랫폼을 통해 불법 사채업자를 연결받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 중개 플랫폼들은 제휴한 대부업체의 폐업이나 법정 최고금리 준수 여부 등 사후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만 믿었다가는 불법 사채의 덫에 걸리기 쉽다.
◇불법 사채 이용자 최대 10만명 달할 수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1~9월 대부업계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2021년 말과 비교해 9만8317명(9.2%) 줄었다. 상당수는 제도권 대출의 끄트머리라고 할 수 있는 대부업에서도 대출받지 못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밀려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금융협회가 2021년 채무 조정을 받은 사채 피해자를 분석해보니 평균 피해 금액(원리금)은 1302만원, 적용된 이자율은 평균 연 229%에 달했다.
최근 고물가·고금리 상황과 맞물려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를 노린 불법 사채 범죄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는 2017년 5937건에서 지난해 1만350건으로 5년 만에 1.7배로 뛰었다. 최근 금리 상승으로 카드, 저축은행 등은 물론 대부업체들도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어 이런 상황은 더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선 대출자가 직접 등록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부업체 이름만 검색해도 등록·폐업 여부가 조회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금감원과 대부금융협회 사이트에 들어가야만 조회할 수 있다. 불법 사금융 척결 범정부 TF는 다음 달 중 단속 사각지대를 해소할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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