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밀턴 프리드먼의 또 다른 실험장

김준기 기자 2023. 1.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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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사용자들의 착취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성공한 노조에는 많은 봉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다. 이런 노조는 다만 높은 임금을 더 높게 할 뿐이다. … 강력한 노조가 조합원들을 위해 확보하는 이익은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다.”

김준기 뉴스콘텐츠 부문장

“학교 교육에서 부모와 자녀는 소비자이며 교사와 학교 관리자는 생산자다. 학교 교육의 중앙집권화는 단위를 대규모화하고 소비자의 선택 능력을 감소시키고 생산자의 힘을 키웠다. … 학교산업은 경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학교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요즘 한국에서 많이 듣는 말 같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계의 태두인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 1980년 낸 책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 나오는 문구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 바로 그 책이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윤 대통령의 말에 이렇게 배어나온다.

“노조가 노동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노·노 간 착취구조 타파가 시급하다.”(지난달 26일 수석비서관회의),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해 보자. 경쟁시장 구도가 돼야만 가격도 합리적이 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관련 상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지난 5일 교육부 업무보고) 40년 전 미국에서 외쳐졌던 신자유주의의 화두가 한국에 재림하고 있는 듯하다.

프리드먼은 노조뿐 아니라 세금, 재정지출, 환경·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최저임금 등 기업활동의 자유를 저해하는 일체를 극도로 싫어했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다. 따라서 통화량 조절만으로 막을 수 있다’로 요약되는 그의 통화주의 이론(그에게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준 핵심 연구 중 하나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기조가 됐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그렇듯 지극히 ‘이론적’이다. 노조가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이끌어내면 ‘가격이 높아지면 사려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경제학 법칙(수요의 법칙)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학부모에게 학교를 ‘선택할 자유’를 주면 학교들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해 교육의 질이 전반적으로 올라간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같지 않을 수 있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알아서 정당한 보상을 해줄까.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욕심으로 극심한 입시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현실의 인간은 경제학 그래프 속의 인간처럼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 프리드먼이 <선택할 자유>에서 주장했던 자유담론들은 선진국에서 정부정책으로 직접 연결된 것이 거의 없다. 대신 쿠데타로 집권한 남미 군사정부들이 그의 이론을 ‘실험’했다. 프리드먼이 교수로 있던 자유주의 경제학의 본산인 미국 시카고대는 1950년대부터 많은 남미 학생들을 받아 자유시장 전사로 키웠다. 프리드먼의 제자인 그들은 ‘시카고 보이즈’로 불렸다. 이들은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경제정책을 이끌며 규제 완화와 민영화, 재정지출 축소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프리드먼 본인도 직접 칠레를 찾아가 조언했다. 칠레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며 2010년엔 남미 국가 중 최초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이것이 시카고 보이즈의 덕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칠레가 본격적인 성장을 하던 시기는 민영화를 중단하는 등 기존 시카고학파 노선을 대폭 수정한 이후다. 무엇보다 시카고 보이즈가 깔아놓은 자유지상주의 정책으로 경제력이 소수에 집중되면서 칠레는 남미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등에서도 군사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시카고 보이즈의 자유시장 실험장이 조성됐다.

프리드먼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신자유주의는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기업·금융 활동의 효율을 높이며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사이 중남미와 아시아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는 분열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극복 방안과 대안을 고심하고 있는 이때 프리드먼이 한국에서 또다시 실험장을 찾은 것 같다.

김준기 뉴스콘텐츠 부문장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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