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부족함을 알고 하늘의 위로를 구하는 수밖에
“목사님, 밤중에 몽둥이를 들고 숨어 있다가 나타나면, 그냥 뒤통수를…!” 노숙했다가 벗어나 공동체에 온 한 형제가 눈을 부라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누군가가 벌써 트랙터 네 바퀴를 세 번이나 바람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라고 주변에서는 한마디씩 한다. 경찰관도 와서 보았다. 마을 반장님도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괘씸해했다. 트랙터를 고치려면, 전기도 없는 산골짜기라서 수십만원씩 든다. 눈 오기 전에 밭을 갈아야 했는데, 몇 주 늦어지고 말았다.
애가 탔다. 마침내 범인을 알게 되었다. 어찌할까 기도하는 중, 분함이 가라앉고 응답이 왔다. “네가 이 산골짜기에 온 것은 경찰에 신고하고 범인 잡으러 온 것이냐? 잘 먹고 잘 살려고 온 것이냐? 고난 받으러 광야로 온 것이 아니냐! 어려운 이들이 치유받고 자립 자활토록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냐?” 나는 회개하였다. “내 개인 소유의 한 평의 땅도 집도 없이 살아왔지만, 그들은 그저 나를 큰 땅 가진 목사로 보지 않았겠나! 나는 엔진톱, 굴착기, 트랙터를 직접 운전하며 돌밭을 일구며, 몸이 망가지고 죽을 고생 한다고 하지만, 이웃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겠나? 배부른 자들의 놀이로만 보지 않았을까!” 이러한 이야기를 공동체의 식구들과 나눈 후, 혹한이 몰아치니 어려운 분들을 더 잘 대접하자고 했다. 마침내 공동체 식구들의 얼굴에 기쁨이 다시 찾아들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연락이 왔다. 한 교회의 청년들이 성탄절에 서울역전에 나가 선물하겠다고 한다. 붕어빵을 직접 구워서 전하고 싶은데 도와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탄절 오후 2시에 서울역전에 나갔다. 우리 산마루교회에서는 이미 노숙인을 위한 예배에서 성탄절 식사로 닭다리를 요리해, 빨간 리본을 매서 대접했다. 따뜻한 목도리와 과일과 식빵도 선물했다. 우리 내외는 파운드케이크를 사서 한 분 한 분 선물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역전에 나갈 계획이 없었으나, 청년들을 도우려고 나갔다. 청년들은 이른 아침부터 붕어빵을 직접 구워서 보온가방에 담아 300여 개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산타 모자를 쓰고, ‘콩 한쪽도 나누어 먹으면 행복합니다!’라는 팻말을 세웠다. 어려운 분들이 줄을 서서 받아갔다.
그런데 한 노숙 여성이 날카로운 목소리로쏘아붙였다. “그래 콩 한쪽을 가지고 나오냐!” “그래 콩 반 쪽씩 먹으라는 것이냐!” 하지만, 청년들은 줄을 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며 두 손으로 나누어 드렸다. 그런데 순간 한 건장한 노숙인이 큰소리치며 삿대질을 한다. “그래 유명한 목사가 성탄절에 붕어빵 가지고 나오냐! 그래 산마루교회가 고작 성탄절에 붕어빵 가지고 나오냐! 반지하 교회도 안 그런다! 기자들에게 고발하겠다!” 붕어빵을 봉지째 내팽개쳤다. 붕어빵이 나뒹굴었다. 곁에 있었던 여성 봉사자가 놀라서 소리쳤다. “어머 그러면 안 돼요!” 안타까워하는 외침이었다. 곁에 있던 청년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욕은 계속되었다. 할 말이 없었다.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들었다. 무슨 대처 방법이 있겠나. 실로 참혹함과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지만, 마음의 상처엔 맷집이 없다. 그런데 더 많은 분들이 모이니 붕어빵마저 다 떨어졌다. 급히 서울역사 대형 마트에서 빵과 음료를 사오도록 했다. 그런데 그마저 문을 닫았다. 인근 여러 빵집을 찾아서 급히 빵을 사고, 음료를 준비해서, 청년들에게 나누도록 제공했다. 얼마 후, 나는 청년들이 걱정되어 위로의 이야기를 했다. 본래 선을 행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정의를 행한다고 세상이 다 내 편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예수님을 봐라! 얼마나 힘드셨냐! 곡해와 조소거리가 되었다. 성경엔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러서야 열매가 있다 했다. 선으로써 악을 이겨야 되고, 사랑으로써 미움을 이겨야 한다. 이분들도 얼마나 어려우면 이러겠냐!
며칠 후, 청년들에게서 뜻밖에 3통의 편지가 왔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저희를 대신해 수습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건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교훈 삼아 계속 사랑과 선을 실천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알게 된 한 목사님이 한마디 한다. “목사님, 나 같아도 화가 났겠네요. 성탄절에 붕어빵이라니요.” 이어서 묻는다. “그렇게 당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회개합니다. 그분들과, 그 상황을, 더 생각하고 나갔어야지요.” 야단도 치나, 회개 외엔 늘 대책이 없다. 부족한 목회자의 길, 스스로 부족을 알고 하늘의 위로를 얻는 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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