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정의는 너의 아이로부터
<더 글로리·사진>가 화제다. 복수극이다.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들에게 비참한 폭행을 당했으나 학교, 경찰 심지어 친모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던 문동은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그리고 자신을 무자비하고 집요하게 괴롭혔던 무리의 우두머리 박연진의 딸 담임이 되어 나타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의 담임이 당한 만큼 돌려주겠노라 선언하자 가해자는 난생처음 불안을 경험한다. 다행히 <더 글로리>의 동은은 아이에게 체벌이나 폭력을 가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볼모로 잡고 있는 효과만큼은 분명하다. 제아무리 천하의 나쁜 사람이라 해도 자식을 인질로 잡힐 땐 작아지나 보다. 작가 김은숙이 노린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맡긴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을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복수를 위해 아이 곁에 다가가는 것은 한국의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다. 혈연 중심의 오래된 문화에서, 아이란 말 그대로 가장 소중한 대체불가 자산이다. 이언희 감독의 2016년작 <미씽: 사라진 여자들>의 아이돌보미 한매도 그래서 가능한 캐릭터였다. 한매는 아이의 죽음을 갚기 위해 지선에게 접근한다. 의사인 남편과 이혼 소송 중인 워킹맘 지선의 처지에선 아이를 돌봐줄 중국 동포 이모님, 돌보미의 손길이 절실하다. 여권이나 비자가 진짜인지 아닌지보다 당장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는지, 엄마의 직감이 먼저다. 한국의 영·유아 보육체계 속에 워킹맘의 사정을 전적으로 봐줄 도우미는 부재한다. 아이만 진심으로 아껴준다면 합법 여부나 자기 사정은 미뤄 둘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부재하는 공공 육아 시스템의 개연성 속에서 한매는 아이를 유괴해 복수를 감행한다.
그렇다면 유치원은 어떨까? 구병모의 소설 <고의는 아니지만>에는 유치원 교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스무 명의 아이들을 모두 평등하게 대하고 싶지만 다섯 명이 말썽이다. “밤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으면서도 보수는 넉넉지 않거나 그마저도 불규칙”한 가정의 아이들은 알림장을 놓치고 준비물을 잊기 일쑤라서 소위 “블랙리스트”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 넋두리한다. 제목처럼 ‘고의는 아니지만’ 그녀는 자꾸 아이들을 구분하고 차별한다.
정소현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너를 닮은 사람>에도 눈여겨볼 장면이 있다. 학교법인 이사장의 손녀가 미술 교사로부터 체벌을 당한다. 말이 체벌이지 책으로 무차별적 가격을 당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다. 명백한 가해자는 기간제 교사였고 사실 의도적으로 이 학교에 지원했음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가해자처럼 보였던 교사가 사실 피해자였으며 폭행을 당한 딸의 어머니, 사립학교법인 집안의 며느리인 그 여성이 가해자이자 파렴치한 도둑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니까, 미술 교사는 복수를 위해 교사가 되어 가해자의 딸에게 접근한 것이다.
언젠가 먼 과거 내가 괴롭혔던 사람이 현재 내 아이의 돌보미, 보육 교사, 담임이나 교사로 돌아온다는 것, 그건 내가 그 피해자를 당면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공포의 공감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복수의 장면으로 그런 대면들을 상상했을 게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과연 교사이자 돌보미인 그녀들은 마침내 갑이 되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고 복수에도 성공했을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던 듯싶다. <고의는 아니지만>의 유치원 교사는 ‘블랙리스트’ 외 나머지 열다섯 명 아이들의 학부모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다 못해 잘못 내뱉은 말로 살해당한다. 기간제 미술 교사는 힘없이 물러나 진심 어린 사과도 끝내 받지 못한다. 정이현의 소설 <안나>의 영어유치원 보육 교사의 형편도 비슷하다. 소위 부유층 자녀들을 상대해야 하는 사교육 현장에서 ‘보육 교사’는 대체 가능한 소모품처럼 여겨진다. 힘과 돈이 있는 학부모들은 을이 아니라 감시자로 군림한다. 무소불위의 힘으로 학교폭력을 무마했던 <더 글로리>의 가해자 학부모들처럼 말이다.
세월이 흘러 멋진 사회인이 된 문동은은 가해자들을 만나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 보며 복수를 예고한다. 통쾌하다.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경고하고 복수하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처럼, 폭력이란 아주 깊은 낙인을 남겨 죄 없는 피해자가 도망가고, 피하게 만드니 말이다. 드라마에선 아직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뤄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가해자들이 불안에 떨고, 피해자가 당당히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공 보육 시스템도, 학교도, 공권력도 지켜주지 못하는 아이, 결국 지옥이 될지도 모를 세상에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이란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