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신자유주의의 끝물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안타깝게도 마중물이 아니라 끝물로 첫 칼럼을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의 끝물! 지난 칼럼에서 대구 아파트 사례를 들어 지역에 만연한 악덕 자본가 흉내 내기를 지적했다. 가치 혁신 대신 인건비 깎아 이윤을 추구한다. 경비원의 직업 안정성은 물론 아파트 주민의 안전마저도 위협하는 일이다. 왜 그럴까?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들도 하는 것 같아 덩달아 끝물에 올라탄다. 이는 대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의 끝물에 올라타 위태로운 ‘바닥으로의 질주’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작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전 세계에 퍼트렸던 영국과 미국은 대놓고 발을 빼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영국과 미국은 ‘반노조, 기업 감세, 시장 제일주의’를 핵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왔다. 이제 이런 정책을 그만두었다. 얼마 전 영국 보수당 정부는 철강업체를 국유화했고, 실리콘 칩 디자인 회사가 미국 제조업체에 매각되는 것을 막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할 수 없게 된 노동자에게 국가가 대신 나서 임금 80%까지 지급했다. 절정기에는 거의 1000만명이 보조금을 받았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보건·교육에 3조6000억달러 지출, 노조 권리 확대, 기업 증세와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 법인세 싼 나라만 골라 메뚜기 떼처럼 옮겨 다니는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 글로벌 최소 법인세도 도입했다. 좋은 임금의 노조 일자리를 창출해서 일하는 가족을 위한 경제를 만든다며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제정했다. 백악관은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친노동자적이고 친노조적인 대통령이다.”
신자유주의가 죽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코로나19 영향으로 잠깐 꺾인 것인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신자유주의 정책이 끝물에 접어들었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한다. 세상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한국 정부는 끝물에 한층 더 힘차게 올라타고 있다. 최종기착지는 이미 말라비틀어진 노동을 더욱더 세차게 쥐어짜는 것.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다. “직무 중심·성과급제로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차별화돼야 한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속뜻은 섬찟하다. 그나마 최소한의 안정성을 누리는 노동자마저도 귀족노조라 비난해서 ‘불안정한 하층민’으로 떨어트리려고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을 유연화하겠다는데, 실제로는 모든 노동자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결기가 시퍼렇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수익성 있는 투자를 지속해서 확보해야 하는 ‘자본가의 영원한 모순’을 잠시나마 해소하기 위함이다. 수익성 있는 투자는 가치 혁신이 이루어지는 곳에 있다. 단기 성과 내기 경쟁만 있는 생태계에서는 가치 혁신은커녕 생존조차 어렵다. 일단 인건비 후려쳐서 이윤을 만들어내자. 모든 기업이 앞다퉈 단기 경주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승리한 기업은 신이 날지 모르겠지만, 사회 전체에 가치 혁신이 사라진다. 가치 혁신은 가치에 장기간 헌신하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 가치를 성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변함없이 가치를 붙들고 헌신한다. 국민 대다수가 불안정한 하층민으로 전락한 하향 평준화 사회에서 가치에 헌신하는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설사 나온다 해도 직무 중심·성과급제로 달달 볶이는 탓에 삶이 불안해서 장기간 가치에 헌신할 수가 없다. 가치가 성스럽다고 인정되면, 당장 성과가 나오든 말든 가치에 오랫동안 헌신할 수 있게끔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대안이 없다”며 냉소를 부추기는 자들이 있지만, 역사는 항상 이를 뒤집는다. “노조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노동을 ‘주적’처럼 대하는 신자유주의의 끝물에서 벗어나는 게 첫발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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