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人문화] “반려견과 다르지 않아요”…우리의 이웃 안내견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일반 사람들과 길을 걸으면 '산책'이라고 하지만 훈련사와 걸으면 '훈련', 시각장애인과 걸으면 '일'이라고 해요. 이는 편견일 뿐이에요. 사람과 개가 나란히 걷는 건 다 같거든요."
시각장애인으로 안내견과 생활하고 있는 유석종 삼성화재안내견학교 프로는 "안내견이 힘들게 일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국민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안내견사업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내견 육성과 훈련, 직원교육 등에서 세계안내견협회(IGDF)의 인증을 받은 검증된 전문기관이다.
삼성은 '진정한 복지 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9월 삼성화재안내견학교를 설립했다.
1994년 안내견 '바다' 분양을 시작으로 매년 12~15마리를 무상 분양해 지난해 9월까지 총 267마리의 안내견을 배출했다. 엄마견과 생후 8주간 안내견학교에서 생활한 레트리버들은 3~14개월 동안 퍼피워킹 자원봉사자 가정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 뒤 6~8개월 훈련을 받고 파트너매칭을 통해 6~8년간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으로 활동하게 된다.
활동을 영예롭게 마무리한 안내견은 새 가족의 반려견으로 삶의 2막을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은퇴 안내견 '새롬이'를 분양받았다. 당시 그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가게나 공공장소에서 거부당하는 일이 없도록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안내견사업이 갓 시작된 90년대 초반에는 안내견과 함께 식당을 찾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할 때 '개'라는 이유로 거부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삼성이 각종 체험활동·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와 국회가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한 법을 신설·개정하면서 안내견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하지만 안내견이 본능을 억누르며 힘들게 훈련을 받아 스트레스가 클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안내견들은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안내견 파트너, 자원봉사자들의 보살핌으로 생활해 평균 수명(13.9세)이 동일 견종에 비해 약 12개월 정도 길다. 가장 오래 생존한 은퇴견인 암컷 '보은'이는 1996년 5월에 태어나 2014년 6월까지 18년 이상 살았다.
유 프로는 "안내견의 훈련 시간은 주 5일, 하루 30~40분 정도"라며 "좋은 기억이 있을 때 훈련을 끝내야 나중에 시각장애인과 걸을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상황에서 안전과 안락함을 위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게 이들의 본능"이라며 "지하철이나 식당에 엎드려 있는 건 힘들고 피곤해서가 아니라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함께 있는 그 상황이 안전하고 편해서"라고 오해를 바로잡았다.
이어 "시각장애인과 연결하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외출할 때 외에는 반려견과 똑같다"며 "우리가 안내견의 보행을 보는 경우는 주로 출퇴근이나 등학교 모습이기에 계속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직장에 도착하거나 학교에 가면 안내견은 편안한 상태로 쉰다"고 덧붙였다.
안내견에 의지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시선도 개선돼야 한다. 안내견학교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시각장애인 파트너가 안내견을 스스로 관리하고 훌륭한 반려견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안내견 파트너 교육은 한 달가량 진행하며, 24시간 일대일 케어로 이뤄진다. 첫 2주는 안내견 학교에 입소해 교육하고, 나머지 2주는 시각장애인의 거주지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생활을 같이 하면서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삼성은 안내견 분양 교육이 완료된 이후에도 소속 훈련사들을 통해 안내견이 은퇴할 때까지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한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개교 3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처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박태진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장은 "안내견과 파트너, 사회 주요 구성원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안내견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이해가 수반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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