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표명 "실물 없다" 탓한 용산…尹-참모진 달리 본 나경원, 사직서 정식 제출
羅 사직서 13일 제출…저고委 관련법·시행령엔 해촉 조건만 명시됐어도 존중
羅, 측근들과 與 당대표 출마여부 논의도…발표한다면 尹 순방 이후 될 듯
'헝가리식 저출생대책' 발안에 대통령실이 결격 시비를 그치지 않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내려놓기로 한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 오는 13일 서면 사직서를 제출한다. 사의 표명 사흘째(12일)에도 뚜렷한 반응이 없던 대통령실이 '사직서 미제출'을 이유로 들자, 거취 문제를 '뒷말' 없도록 확고히 하겠단 취지다.
나경원 전 의원 측은 이날 언론에 이처럼 사직서 제출을 예고했다. 나 전 의원이 지난 10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써 "대통령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저고위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지만, 사실상 지연전략에 부딪힌 것과 무관치 않다. "들은 바 없다"고 모른 체하던 대통령실은 만 하루 뒤(11일)에야 인정했다.
전날(11일) 익명의 대통령실 관계자가 "사직서를 본인이 제출하면 인사혁신처를 통해 (사직서가) 오고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날 보도됐다. "나 전 의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애정이 여전히 크다. 비 온 뒤 땅이 굳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윤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전언까지 흘러나왔다.
나 전 의원은 전날 "어떤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는다"며 사퇴를 분명히하고 어떤 '자리 거래'도 없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절차'를 이유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당심(黨心) 유력주자군으로 분류돼온 그의 거취 문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양상이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어떤 구체적 행정 절차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23조에 명시된 조건인 '고령화 및 저출산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서 위원장(대통령)에 의해 위촉위원이 됐고, 당연직인 보건복지부 장관 포함 2명의 간사위원 중 1명으로 다시 지명돼 부위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스스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밝히는 경우'로 위원장이 '해촉할 수 있는' 상태다.
7개 부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만큼 간사위원으로서 '장관급' 꼬리표가 붙었지만 애초 비상근직에 현직 '관료'와는 결이 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시행령에 구체적인 해촉 절차가 규정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실물 사직서'가 없어 수리 여부를 못 정한다고 버텼고, 나 전 의원 측은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절차를 따르겠다는 태도다.
나 전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이날 "나 전 의원은 어떤 형태로도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려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친윤(親윤석열) 노선을 유지해온 입장에서 반윤(反尹)으로 규정당하는 걸 경계한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일부 참모진에서 서로 간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치려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날 나 전 의원은 서울 모처에서 전직 의원 등 측근들과 만나 당권 도전 여부를 논의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내부에 출마 기류는 강하지만, 쉽사리 윤 대통령을 앞서가는 행보는 하지 않을 분위기다. 당대표 출마를 발표하더라도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으로 시작되는 윤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오는 14~21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저고위 부위원장으로서 가진 복지부 기자들과 신년 간담회에서 '결혼 부부에 약 5000만원 목돈을 장기 저리대출해주고 첫째~셋째 아이 출산 순으로 이자·원금 탕감'하는 헝가리의 저출생대책 성공사례 벤치마킹을 제안했다. 목돈 대출을 약 2억원으로 적용하거나, 전세 또는 주택담보대출로 확대를 검토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튿날(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윤석열 정부 기조와 다른 개인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7일엔 '대통령 불쾌·격노설'이 흘러나왔다. 나 전 의원은 8일 "대통령실의 우려 표명을 십분 이해한다"고 숙였으나,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부적절한 언행"을 꼬집으며 해촉까지 시사했다. 9일에도 "행정부의 일원임을 망각한 처사"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처럼 대통령실이 나흘 연속 나 전 의원을 질타했음에도 당권 지지세는 요지부동이었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7~9일 전국 성인 최종 1020명에게 실시해 이날 공표한 1월2주차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신뢰수준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국민의힘 차기 대표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설문에서 국민의힘 지지 응답자(344명)의 30.7%는 나 전 의원을 꼽았다. 뒤이어 친윤계 조직 지원을 받는 김기현 의원 18.8%, 유승민 전 의원 14.6%, 안철수 의원 13.9% 순이었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을 '잘함'으로 본 긍정평가층(387명)에서도 나경원 31.0% 선두에 김기현 21.8%, 안철수 18.6% 순으로 상위권에 올라 '1강(强) 2중(中)'구도가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3·8 전대에서 100% 당원투표로 당대표·최고위원을 선출키로 한 만큼 앞으로도 국민의힘·윤 대통령 지지층에서 표출되는 여론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해당 조사 결과가 지난 10일 오전 공표된 뒤 대통령실과 여당 친윤계의 '나경원 찍어누르기' 수준이던 기조에도 일부 변화 조짐이 보였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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